7/28 "하나님의 목적인가, 나의 목적인가? - God’s Purpose or Mine?" (막 6)

7/28  "하나님의 목적인가, 나의 목적인가? - God’s Purpose or Mine?" (막 6)

우리가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목적’이라고 부르십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나의 꿈입니까? 그분의 목적은 지금 내가 주님과 주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요동 속에서 평안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입니다.

* 7/27 "지식으로 가는 길 - The Way to Knowledge" (요 7)

* 7/27  "지식으로 가는 길 - The Way to Knowledge" (요 7)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황금률은 지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사람이 과학적인 지식을 원하면 지적 호기심이 그를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오직 순종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일들이 내게 힘들어 진다면 이는 분명히 순종하지 않으려는 뭔가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지적 어둠은 무지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영적 어둠은 내 안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7/26 "정결함으로 가는 길 - The Way to Purity" (마 15)

7/26  "정결함으로 가는 길 - The Way to Purity" (마 15)

내가 악당이라는 사실을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이는 겁 많은 소심함과 문명 생활의 보호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서게 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들을 향한 진단이 옳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은 개인의 삶의 중심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 가운데서 드러나셨던 그 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곧 성령만이 더러움이 전혀 없으신 완전한 청결이십니다.

7/25 "성령의 폭발적 능력 - Am I Blessed Like This?" (마 5)

7/25  "성령의 폭발적 능력 - Am I Blessed Like This?" (마 5)

산상수훈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적용한다면 굳이 우리가 거듭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의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시는 것처럼, 성령에 의해 주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할 엄중한 작업입니다. 산상수훈은 규범이나 율례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진술한 것입니다.

* 7/24 "하나님의 본성과 우리의 동기 - His Nature and Our Motives" (마 5)

* 7/24  "하나님의 본성과 우리의 동기 - His Nature and Our Motives" (마 5)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구속을 통해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수 있고, 그를 갓난아기같이 순결하고 단순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결은 만일 내가 주 안에서 재창조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분의 구속을 통해 착수하신 일입니다.

7/23 "거룩의 신비 - Sanctification (2)"

7/23  "거룩의 신비 - Sanctification (2)"

거룩한 삶의 경이로운 비밀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의 부패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룩(성화)은 곧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의 놀라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적인 선물인데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 7/22 "거룩의 조건 - Sanctification (1)"

*** 7/22  "거룩의 조건 - Sanctification (1)"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이 바로 왕국의 입구입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난함에 대한 깨달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영적 전선으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7/21 "하나님 왕국으로 들어가는 문 - The Doorway to the Kingdom"

7/21  "하나님 왕국으로 들어가는 문

 - The Doorway to the Kingdom"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이 바로 왕국의 입구입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난함에 대한 깨달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영적 전선으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 7/20 "주님앞에서 걷는 삶 Dependent on God’s Presence"

*** 7/20  "주님앞에서 걷는 삶 Dependent on God’s Presence"

실체에 서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실체를 믿음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실제로 언제나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 우리는 잠잠히 주님의 임재를 바라는 가운데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 7/19 "자발적 순종 - The Submission of the Believer"

7월 “구름 속에서 무엇을 봅니까?”
(슬픔, 고통, 궁핍의 상황들에 휩싸일 때 )


John 13:12-20

요한복음 13:12-20

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18 나는 너희 모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나와 함께 빵을 먹은 자가'. 시 35:19; 69:4

19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요,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사람이다."


중심 구절 / Key Verses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_요 13:13

You tell me to be a teacher or a teacher, and you're right. I'm like that _ John13:13.

중심 주제 / Key

7/19 "자발적 순종 - The Submission of the Believer"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주님은 절대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결코 “너는 …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완벽하게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같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을 만큼 자유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분을 죽였던 것같이 우리도 그분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자유합니다. 그래도 주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구속에 의해 내 안에 창조되는 즉시 나는 주님의 완전한 권위 아래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도덕적(영적) 통치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 합당하오니”(계 4:11).

내 안에 있는 가치 없는 것들만이 가치 있는 분께 순복하기를 거부합니다. 만일 내가 자신보다 거룩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통해 오는 것들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내 안에 가치가 없는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들입니다. 하나님은 지적인 면이 아니라 거룩한 면에서 우리보다 조금 나은 자들을 사용해 우리가 주님의 통치하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교육하십니다. 그 후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자세는 주님을 향한 순종으로 일관됩니다.

주님께서 순종을 강요하신다면 그분은 노예 감독자와 같을 것이요 참된 권위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만나뵙게 되면 당장 주께 순종합니다. 우리는 쉽게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것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는 나의 순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흙탕에 빠져 있는 ‘순종’이란 단어를 살려내야 합니다.

순종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참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면 참된 순종이란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그분은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은 구속주로서의 순종이었습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

오늘 읽고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기도문을 작성합니다.
(Take the words you read and reflected on today and write your own prayer.).

*“주님, 하나된 관계 즉 동등한 관계 가운데서 아들 또는 딸이기 때문에 순종게 하소서.”

[나의 기도 - My Prayer]

:



*** 7/18 "신앙의 신비 -The Mystery of Believing" (행 9)

*** 7/18  "신앙의 신비 -The Mystery of Believing" (행 9)

주님은 내가 순종해야 한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으시지만 만일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영혼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망 확인서에 서명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얼굴을 맞대고 섰을 때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주께서는 절대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구속의 재창조의 능력으로부터 이탈되고 있는 것입니다.

7/16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 - The Concept of Divine Control" (마 7)

7/16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 - The Concept of Divine Control" (마 7)

예수님은 성령이 있는 자들에게 행동의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이 간단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이 뜻은 주의 제자들은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과 주를 향한 완전한 신뢰를 언제나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 7/15 "영적 영예의 순간 - My Life’s Spiritual Honor and Duty" (롬 1)

*** 7/15 "영적 영예의 순간 - My Life’s Spiritual Honor and Duty" (롬 1)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께 팔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복음으로 인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사람입니다. 나는 주님께 완전한 종이 되었을 때만 자유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를 멈추고 예수님의 종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실제 삶 속에서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된다는 뜻입니다.

7/13 "비젼의 댓가 - The Price of the Vision" (사 6)

7/13  "비젼의 댓가 - The Price of the Vision" (사 6)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뵈오면서 아무것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처음도 하나님이요 둘째도 하나님이며 셋째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온 세상에서 나의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 밖에 없습니다.” 계속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당신이 정녕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사는 것을 그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 7/12 "영적으로 자기를 찾는 교회 - The Spiritually Self-Seeking Church" (엡 4)

*** 7/12  "영적으로 자기를 찾는 교회 - The Spiritually Self-Seeking Church" (엡 4)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 속에서 인류의 회복은 우리 각자의 삶에서뿐 아니라 교회가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목적을 위해 사도를 보내시고 선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주님의 성품을 이 세상에 구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7/10 "영적으로 게으른 성도 - The Spiritually Lazy Saint" (히 10)

7/10  "영적으로 게으른 성도 - The Spiritually Lazy Saint" (히 10)

우리는 안일한 삶을 목표로 해서 기도를 사용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안정과 기쁨을 얻기를 원할 뿐이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실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분을 통해 복을 즐기려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