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내게로 오라'는 초대 - Coming to Jesus” (마 11)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Come to Me… —Matthew 11:28

Matthew 11:25-30

(마 11:25-30, 새번역)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나에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단순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초대입니다.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기보다, 먼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께 나아오기를 미룹니다. 고난이 와도, 눈물이 나도,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길을 찾으려 합니다. 하나님이 “큰일”을 맡기시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주님은 “그냥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단순한 순종이 진짜 믿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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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전에 일어나야 할 일

“내게로 오라”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요? 성령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비추시며,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장벽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자존심일 수도 있고, 미움이나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 단단한 벽을 흔드실 때, 우리가 진심으로 “그 벽이 무너져도 좋습니다”라고 고백해야 비로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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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기다리신다

우리는 기도할 때 종종 “이번에는 내가 정말 받았다!”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돌아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주님은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십니다. 우리를 맞아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붙잡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치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또 한 번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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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무언가를 이루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나의 자존심, 불안, 염려를 내려놓을 때 진정한 쉼이 시작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부르심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참된 쉼과 회복이 시작됩니다. 아멘.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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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구원 계획과 개인적 적용 - The Nature of Reconciliation” (고후 5)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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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구절 / Key Verses

He made Him who knew no sin to be sin for us, that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 —2 Corinthians 5:21

2 Corinthians 5:11-21

(고후 5:11-21, 새번역)

[11]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12]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치켜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미쳤다고 하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면 여러분을 두고 온전한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_고후 5:21

죄는 근본적으로 관계입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강력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그릇된 ‘존재 상태’가 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이고 뿌리깊은 죄성을 해결하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죄악들’을 다룹니다. 성경만이 ‘죄’를 다룹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제일 먼저 직시하시는 것은 죄의 유전이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사람의 마음을 찔러 쪼개는 능력을 잃은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제시할 때 이 점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으로 짓는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죄의 유전을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친아들’이 죄인 되게 하심으로 죄인을 성도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계시되는 내용은 주님께서 우리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일체가 되심으로 세상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해 인류가 지은 모든 죄를 어깨에 지시고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죄인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바탕 위에 전 인류를 두셨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인류를 회복시키셨으며 누구든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것을 기반으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속할 수 없습니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며 완벽하게 끝났고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입니다. 구속의 계시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고 의식하는 문제는 언제나 구별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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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거룩한 유전형질 - The Nature of Regeneration” (갈 1)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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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구절 / Key Verses

When it pleased God…to reveal His Son in me… —Galatians 1:15-16

Galatians 1:11-24

(갈 1:11-24, 새번역)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15]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16]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18] 삼 년 뒤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나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 밖에는,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나는 유대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는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23] 그들은 다만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그가 전에 없애버리려고 하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하는 소문을 들을 따름이었습니다.

[24] 그래서 그들은 나를 두고 하나님께 줄곧 영광을 돌렸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_갈 1: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해결하셔야 하는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내가 더 이상 “나는 거룩하지 않고 거룩해질 가능성도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유전형질을 내게 주십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뿐이셨다면 주님의 가르침은 절망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중생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내 안에 주님의 거룩한 유전형질을 넣으실 수 있는 분이라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해져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의미를 알기 시작합니다.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 안에 있었던 유전적인 성향을 우리에게 넣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기준은 우리 안에 넣으신 그 성향을 전제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결정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나의 죄에 대한 판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절박해질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그의 영에 넣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개인적인 영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에 의해 힘을 얻게 되면서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갈 4:19) 됩니다. 구속의 영적인 기적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새로운 성향을 넣으실 수 있다는 것이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절박하게 되어 나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될 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절박한 그곳까지 가야 합니다. 내가 그 필요를 의식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그 성향 곧 책임 있게 순종하는 존재를 내 안에 넣으실 수 없습니다.

한 사람에 의해 죄의 성향이 전 인류에게 들어온 것같이, 다른 ‘사람’에 의해 성령께서 전 인류에 들어오셨습니다. 구속은 죄의 유전으로부터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흠 없는 유전 곧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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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멸망의 인침 - The Nature of Degeneration” (롬 5)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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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구절 / Key Verses

Just as through one man sin entered the world, and death through sin, and thus death spread to all men, because all sinned… —Romans 5:12

Romans 5:12-21

(롬 5:12-21, 새번역)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_롬 5:12

성경은 하나님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전 인류를 벌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의 기질 곧 ‘자기 권리 주장’이 한 사람에 의해 전 인류에게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이 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제거했다고 말합니다(히 9:26). 이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한 계시입니다. 죄의 성향은 부도덕이나 악행이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의 신’이라는 자기 실현의 성향입니다. 이 성향은 예의 바른 도덕적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고, 버릇없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같은 근본 곧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도 직면하셨고 청렴하며 도덕적인 고상한 사람들도 만나셨지만 그들의 도덕적 타락이나 성취에 대해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셨는데, 바로 사람의 성향이었습니다.

죄는 타고나는 것으로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속을 통해 죄를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의 유전으로 저주 아래 놓인 전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디에서도 사람이 물려받은 죄의 유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정죄는 내가 죄의 유전과 함께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의 유전으로부터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을 거절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을 거절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멸망의 인침을 받게 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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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 The Place of Ministry” (막 9)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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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구절 / Key Verses

He said to them, “This kind [of unclean spirit] can come out by nothing but prayer and fasting.” —Mark 9:29

Mark 9:14-29

마가복음 9:14-29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마17:14-20,눅9:37-43상반절]

14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와 보시니 다른 아홉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 몇 사람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

15 사람들은 예수를 보자 모두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16 예수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다투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17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병든 아들을 선생님께 보이려고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귀신 들려 말을 못하는데다가

18 한번 발작이 일어나기만 하면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며 몸이 빳빳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그들이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믿음이 적은 세대여.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너희와 함께 있어야 온전히 믿겠느냐?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

20 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오자 귀신이 예수를 보고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아이는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아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되었는가?' 아이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22 발작이 일어나면 아이는 불속이나 물속으로 마구 뛰어들어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하실 수만 있다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실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24 아이 아버지가 소리쳤다. `제가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십시오.'

25 예수께서는 군중이 더욱더 밀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다. `이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26 그러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키고 나갔다. 그 바람에 아이가 쓰러져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군중들의 입에서 `아이가 죽었구나' 하는 말이 흘러 나왔다.

27 그때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가 일어나 돌아갔다.

28 그 뒤에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다. `왜 저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기도하지 않고는 쫓아낼 수 없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_막 9:29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역사는 오직 마음을 예수님께만 집중하고 또 집중할 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능력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서 나온 생각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제자들처럼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주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열심을 낼 때, 오히려 그 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외부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당신이 여전히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힘써야 할 섬김인데, 예수님과 당신 사이에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짜증을 내며 무시하거나 그냥 방치한 가운데 쌓아두지 말고 그 문제를 직면해 예수님 앞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통과한 그 문제는 예수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까지 당신이 결코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독수리같이 날개치며 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려오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능력은 내려와서 낮아진 가운데 사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이란 가장 치욕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싫어요. 나는 하나님과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아요”라고 말하면서 수용을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실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직면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러한 굴욕적인 상황으로 인해 주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고 공포 가운데 빠지겠습니까?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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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계곡에 거할 때 - The Place of Humiliation" (막 9)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If You can do anything, have compassion on us and help us. —Mark 9:22

Mark 9:14-29

마가복음 9:14-29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마17:14-20,눅9:37-43상반절]

14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와 보시니 다른 아홉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 몇 사람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

15 사람들은 예수를 보자 모두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16 예수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다투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17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병든 아들을 선생님께 보이려고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귀신 들려 말을 못하는데다가

18 한번 발작이 일어나기만 하면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며 몸이 빳빳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그들이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믿음이 적은 세대여.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너희와 함께 있어야 온전히 믿겠느냐?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

20 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오자 귀신이 예수를 보고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아이는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아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되었는가?' 아이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22 발작이 일어나면 아이는 불속이나 물속으로 마구 뛰어들어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하실 수만 있다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실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24 아이 아버지가 소리쳤다. `제가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십시오.'

25 예수께서는 군중이 더욱더 밀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다. `이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26 그러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키고 나갔다. 그 바람에 아이가 쓰러져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군중들의 입에서 `아이가 죽었구나' 하는 말이 흘러 나왔다.

27 그때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가 일어나 돌아갔다.

28 그 뒤에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다. `왜 저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기도하지 않고는 쫓아낼 수 없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_막 9:22

변화산에서 정상의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현실로 내려와서 조금도 쉴 틈이 없이 현실의 문제들을 대면하게 됩니다. 현실은 아름답지도 않고 시적이지도 않으며 신나는 일들도 없습니다. 높은 정상에서 느끼던 희열은 이제 계곡의 지긋지긋한 일들로 메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계곡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낮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가치를 진정으로 드러낼 수 있고 우리의 충성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마음속의 자연스러운 이기심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는 영웅적인 정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특별히 계곡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정상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셔서 계곡으로 이끄십니다. 그 계곡에서 비로소 그들은 산에서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 마음속의 의심이 뿌리채 뽑히는 곳은 낮은 계곡입니다. 당신의 삶을 되돌아 보십시오. 당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때까지 주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에 올랐을 때 당신은 뭔가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곡에서 일상적인 일들과 부딪칠 때는 어떠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성화했다는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도, 지금 당신을 모독하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과 변화산 정상에 있었던 마지막 때에 당신은 하늘의 모든 능력과 이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천한 계곡에서 의심하는 자가 된 것은 아닙니까?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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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내려오는 능력 - The Place of Exaltation" (막 9)

10월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십시오!”
(삶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Jesus took…them up on a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Mark 9:2

Mark 9:2-13

마가복음 9:2-12 / [변화산 위의 광경]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하였다.

3 그 옷은 이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으리만큼 눈부시게 희고 빛났다.

4 그리고 거기에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서 예수와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5 그때 베드로가 소리쳤다. `선생님, 정말 굉장하군요. 저희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서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각각 모시고 싶습니다.'

6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엉겁결에 나온 말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7 바로 그때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8 제자들이 곧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예수만이 그들 곁에 계셨다.

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며 `인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10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11 제자들은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반드시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12 예수께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며 `왜 성경에는 인자가 고난과 온갖 모욕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해 놓았겠느냐?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를 푸대접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_막 9:2

우리는 모두 정상에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곳에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기에 계속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적 삶의 테스트는 정상에서 내려올 줄 아는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르는 능력만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변화산 정상에 머무는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곳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이 마귀로 가득 찬 세상에 내려와 이 세상의 사람들을 영적으로 들어올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변화산 정상에서의 체험, 해돋는 새벽,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 등을 위해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직 영감을 얻기 위한 순간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계곡’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곧 일반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력을 증거해야 합니다. 영적 이기심은 언제나 정상에만 머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천사처럼 말하고 천사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꼭대기에만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상의 시간들은 특별한 시간이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때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영적 이기심은 모든 시간을 그러한 예외적인 시간으로만 만들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유익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교훈 이상의 의미를 줍니다. 곧 인격을 빚어냅니다. 산 위의 정상은 우리에게 뭔가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뭔가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은 위험한 함정을 안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이 없습니다. 산 정상에 있는 순간들은 드문 기회들이며, 그 기회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귀한 체험들입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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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The Awareness of the Call - 초자연적인 부르심" (전 9)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for necessity is laid upon me; yes, woe is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1 Corinthians 9:16

1 Corinthians 9:1-27

(고전 9:1-27, 새번역)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10]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_고전 9:16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손길을 잊기 쉽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정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훨씬 더 초자연적입니다. 한 사람의 삶 가운데서 주의 부르심을 깨닫는 것은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나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새벽빛같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오든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뭔가 초자연적인 흐름과 함께 오며 아주 분명한 희열이 동반됩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았던 깜짝 놀랄 부르심이 당신의 삶을 휘어잡는 것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 및 성화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이 거룩하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자신에게 맡겨진 피할 수 없는 사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당신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초자연적 부르심을 무시하거나 망각해왔다면 당신의 상황들을 잘 점검해 보십시오.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당신의 생각이나 특별한 능력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으며 이를 위한 그의 노력을 막을 것이 없었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역경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역을 위한 모든 수고는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낼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목적에 순응하면, 주님은 당신의 의식 세계뿐만 아니라 당신이 닿을 수 없는 당신의 생명의 깊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조화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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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The “Go” of Reconciliation - 주님이 주신 아픔" (마 5)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someone said to Him, “Lord,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Luke 9:57

Luke 9:57-62

(눅 9:57-62, 새번역)

[57]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_눅 9:57

이 사람에 대한 주님의 태도는 그를 좌절시킬 정도로 엄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왜 놓치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굳이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시고 그를 실망시켜 보내실 필요는 없잖아요.” 절대 주님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더 이상 아프고 상처 받을 것이 없을 때까지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를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결국 우리를 망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엄하게 다루십니다. 주님의 대답은 이 상황 가운데 변덕스럽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당신에게 아픔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당신은 주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아프게 할 정도로 뭔가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8). 이 말씀은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거절은 오직 주님, 나 자신, 그리고 좌절된 꿈만 남깁니다. “수많은 일들이 오고 가되 너의 좌표는 나와의 관계여야 한다. 내 머리를 둘 곳이 없다.”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 대신에 가족들에게 민감한 충성을 앞세워 예수님을 맨끝에 둡니다. 충성에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십시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눅 9:61). 이 사람은 가려는 마음은 강렬한데 결국 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엄한 부르심은 작별인사를 할 여유도 주지 않습니다. 작별인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일단 오면, 출발하기 시작하고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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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The “Go” of Reconciliation - 성령의 예리함에 따라" (마 5)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If you…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Matthew 5:23

Matthew 5:21-26

(마 5:21-26, 새번역)

[21]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25]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 얼른 그와 화해하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주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어서, 그가 너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26]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_마 5:23

당신이 제단에 나아갔을 때 당신의 형제가 당신에게 원망할 일이 생각난다면 그것은 병적으로 예민한 탓이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 당신의 의식 속에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을 떠올린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주 사소한 일까지 교훈하실 때 성령의 예리한 감수성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주님의 지시는 간단합니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마 5:24). 온 길로 되돌아가서 주님이 당신에게 지시하셨던 확신에 따라 행하십시오. 당신에게 원망할 것이 있는 그 사람에게 가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화해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가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권리에 대해 물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표시는 그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화목을 향한 과정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먼저 영웅적인 자기 희생이 있고, 그 다음에 갑자기 성령의 예민함에 의해 마음이 찔리고, 확신의 지점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 후 당신이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무랄 데 없는 마음과 자세로 대하게 됩니다. 그 후 아무 거리낌 없이 참으로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당신의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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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 "The “Go” of Relationship - 초자연적인 은혜" (마 5)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Whoever compel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atthew 5:41

Matthew 5:38-42

(마 5:38-42, 새번역)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 출 21:24; 레 24:20; 신 19:21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_마 5:41

주께서 요구하시는 관계는 그분이 우리 안에 초자연적인 역사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압제와 불의를 당해도 그들 마음속에는 조그마한 분노를 품은 흔적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그 부담은 그 어떤 열정으로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인데, 바로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주님의 정결케 하는 샘의 물레방아를 통과하면 오직 한 가지 목적만 남습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나를 보내소서.” 다른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은 결코 희미해져서는 안 됩니다.

산상수훈은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성향을 바꾸시고 주님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때 내 안에서 발생할 일들을 명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초자연적으로 제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끈질긴 노력으로는 분명히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시작하며 우리는 이 하나님의 강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택하심에 불순종할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 제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 이끌리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분의 역사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 자취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자 하나를 만드시는 과정은 초자연적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역량에 따라 제자를 세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라고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들만 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 일을 하려고 할 때 십자가는 언제나 따라올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오늘 읽고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기도문을 아래 답글 창에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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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주의 뜻을 행하기 - The Missionary’s Goal" (눅 18)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32 For he shall be delivered unto the Gentiles, and shall be mocked, and spitefully entreated, and spitted on: Luke18:32

Luke 18:31-34

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_눅 18:31

자연적인 삶에 있어서는 사람이 발전함에 따라 야망도 바뀝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이 같습니다. 그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도록” 힘쓰며 그렇게 마칩니다.

선교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지 유용한 사람이 된다거나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유용한 사람이 되고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선교의 목적은 주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 가운데서 예루살렘은 십자가 상에서 그분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절정에 이르는 장소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그곳까지 가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핍박받는다는 이유로 어떤 마을들을 급하게 지나지 않으셨고, 그분이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어떤 마을에 오래 머물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감사나 배은망덕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뜻을 한치라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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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하나님의 종 - The Missionary’s Predestined Purpose" (사 49)

9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들 가운데 숨고 싶을 때)

My Utmost for His Highest
QT 가이드

중심 구절 / Key Verses

Now the Lord says, who formed Me from the womb to be His Servant… —Isaiah 49:5

Isaiah 49:1-7

[만방에 비치는 빛 이스라엘]

(사 49:1-7, 새번역)

[1]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4]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 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올바로 심판하여 주셨으며, 내 하나님께서 나를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

[5]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7] 이스라엘의 속량자, 거룩하신 주님께서, 남들에게 멸시를 받는 사람,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왕들이 너를 보고 일어나서 예를 갖출 것이며, 대신들이 또한 부복할 것이니, 이는 너를 택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신실한 나 주 하나님 때문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_사 49:5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가장 먼저 발생되는 사건은 우리의 편견과 편협한 생각들과 국부적인 충성심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만을 위한 종으로 변하게 됩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죄는 인류로 하여금 다른 길로 빠지게 하였지만 하나님의 목적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거듭날 때 우리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곧 나는 하나님을 위해 피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나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깨닫는 것은 이 땅에서 가장 큰 기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창조의 목적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일편단심의 마음을 채널로 하여” 전 세계를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의 주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망치게 되면, 하나님은 한쪽에서 우리가 아무리 고통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주장을 좌절케 하실 것입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되었으며 그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완벽하게 빚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들이 왜 그렇게 가차없이 엄격한지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분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넣어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완전한 엄정함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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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 - The Divine Commandment of Life" (마 5)

9/20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 - The Divine Commandment of Life" (마 5)

*사진/튀르키에/Ankara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여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십시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나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9/19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 Are You Going on With Jesus?" (눅 22)

9/19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 Are You Going on With Jesus?" (눅 22)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우리를 통해 우리 안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주님과 계속적으로 함께하며 그 상황들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 시험들은 주님이 당하시는 시험들로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향한 시험들이지 우리가 당하는 시험들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예가 당신의 육신의 삶에 의해 좌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