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의 빈약함을 결코 스스로 깊이 이해하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단 한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곳에 이르렀다면, 이제 우리는 이 내면의 사역 - 중보의 사명 속으로 우리의 전 존재를 기꺼이 부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은 미풍처럼 부드러워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 가운데 살지 않으면 결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가책은 가장 부드럽게 오기 때문에 그분의 음성을 감지할 만큼 예민하지 않으면, 당신은 성령을 소멸할 것이고 영적 생활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성령의 가책은 언제나 잔잔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오는 작은 소리이기에, 오직 깨어 있는 성도들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지혜는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 한, 결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유한한 몸이 주님께 완전히 굴복하는지, 주님께서 이 몸을 통해 매 순간마다 역사하시는지 살펴야 합니다. 주님의 생명이 매 순간마다 드러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의 부르심은 주님의 목적을 위해 그분 자신과 동료가 되도록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동료로서의 자격 시험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들이 완전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주의 경륜 가운데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계십니다.
신체적으로는 당신이 자신을 소모할수록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당신이 자신을 소모할수록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내일 또는 다음 시간을 위해 힘을 주지 않으십니다. 단지 그 순간의 긴장을 위해 힘을 주실 뿐입니다. 유혹은 문제를 대할 때 상식으로 대하려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려움을 당할 때 큰 기쁨이 넘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상황이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됩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통치에 반항하는 듯한 우리 개인 생활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슬픔, 고통, 궁핍의 상황들입니다.하나님의 영은 이 구름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믿음으로 걸을 수 있는가를 가르치십니다. 만일 구름이 없다면 우리에게 믿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목적’이라고 부르십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나의 꿈입니까? 그분의 목적은 지금 내가 주님과 주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요동 속에서 평안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입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황금률은 지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사람이 과학적인 지식을 원하면 지적 호기심이 그를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오직 순종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일들이 내게 힘들어 진다면 이는 분명히 순종하지 않으려는 뭔가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지적 어둠은 무지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영적 어둠은 내 안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악당이라는 사실을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이는 겁 많은 소심함과 문명 생활의 보호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서게 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들을 향한 진단이 옳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은 개인의 삶의 중심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 가운데서 드러나셨던 그 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곧 성령만이 더러움이 전혀 없으신 완전한 청결이십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적용한다면 굳이 우리가 거듭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의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시는 것처럼, 성령에 의해 주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할 엄중한 작업입니다. 산상수훈은 규범이나 율례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진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