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길을 여시고 닫으시다
닫힌 길 앞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 우리는 성령이 기름 부어 보내신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길 위에서 어떻게 인도받는지를 봅니다.
먼저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앞에 서 있습니까.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습니까.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혀 버린 길 앞에서 멈춰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막힌 길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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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열린 길로도 인도하시고,
막힌 길로도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인도하심을 문이 열리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일이 풀리면 하나님의 뜻이고, 막히면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성령은 열린 길로도 인도하시고, 막힌 길로도 인도하십니다.
막으심 — 사도행전 16:6-7
바울 일행에게는 선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비두니아로 가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선한 길이 두 번 닫혔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 사도행전 16:6-7
여기서 정확히 짚을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어떻게 막으셨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환경으로 막으셨는지, 마음의 확신으로 막으셨는지 본문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어내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막으신 분이 성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를 구분합니다. 이 막힘은 고난과 다릅니다. 같은 16장 뒤에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때 바울은 물러서지 않았고, 감옥 문이 열렸을 때에도 떠나지 않았습니다(16:22-28). 고난은 물러서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막힘은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 둘을 혼동하지 않기 바랍니다.
구약의 백성도 그렇게 걸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렇게 주님의 지시에 따라 길을 떠났고, 또한 주님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날 동안에는, 진에 머물렀다."
— 민수기 9:18
떠나는 것도 주님의 지시였고, 머무는 것도 주님의 지시였습니다. 열리는 것만이 아니라 멈추게 하시는 것도 인도하심입니다.
목장을 섬기는 목자들께 말씀드립니다. 열심히 준비한 계획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고, 시작하려던 모임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 실패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막힌 길은 버림받은 길이 아니라 새로운 인도하심의 길입니다.
걸으며 기다림 — 사도행전 16:8
길이 두 번 막힌 뒤에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 사도행전 16:8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다음 길이 어디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걸었습니다.
막힌 길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낙심하여 멈춰 서거나, 닫힌 문을 계속 두드립니다. 바울은 둘 다 하지 않았습니다. 걸으며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이십니다. 그분의 양은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 요한복음 10:27
길이 막혔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목자의 음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가까이 걷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걷는 사람이 다음 음성을 듣습니다.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시간에 목자들께 부탁드립니다. 모임을 멈추지 마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한 사람을 향한 심방과 연락을 멈추지 마십시오. 걸으며 기다리는 자리에서 성령은 다음 길을 보여 주십니다.
환상 — 사도행전 16:9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 사도행전 16:9
닫힌 길 끝에서 성령은 지도를 주시지 않고, 사람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인도하심은 막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을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 마태복음 9:36-37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 일꾼이 적은 추수밭이 예수님의 눈에 먼저 보였습니다. 목자란 길이 막힌 날에도 도움을 청하는 한 사람을 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케도니아는 어디입니까. 이번 주 여러분의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령이 보여 주시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함께 분별하고 곧바로 순종 — 사도행전 16: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 사도행전 16:10
10절에서 말하는 사람이 “그들”에서 “우리”로 바뀝니다. 환상을 본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부르심의 확신은 혼자 정한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눈 것이었습니다.
지혜의 말씀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의논 없이 세워진 계획은 실패하지만, 조언자들이 많으면 그 계획이 이루어진다."
— 잠언 15:22
혼자 분별하면 환상과 내 소원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함께 묻습니다. 그리고 함께 분별했으면 미루지 않습니다. 본문은 “곧” 건너가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목자는 혼자 결정하지 않습니다. 목자들과 함께 묻고, 목사와 함께 묻고, 확신이 서면 미루지 않고 움직입니다. 함께 분별하는 것과 곧바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의 걸음입니다.
결론 — 건너간 곳에서 만난 루디아
마케도니아로 건너간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안식일에 강가로 나가, 모인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가운데 두아디라 출신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셨습니다(16:13-14).
두아디라는 아시아 지방의 도시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는데, 아시아 출신 사람이 마케도니아에서 복음을 듣습니다. 성령이 막으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19:10).
루디아는 집안 사람들과 함께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에게 자기 집에 머물기를 청했습니다(16:15). 후에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위로하고 떠났습니다(16:40). 본문은 그 집이 교회로 모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합니다. 막힌 길 끝에서 열린 자리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고, 머물 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닫힌 길 앞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닫힌 길 끝에도, 열린 길 끝에도 주님이 준비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은 열린 길로도 인도하시고,
막힌 길로도 인도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목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목자들이 서는 길이 열린 길이든 막힌 길이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양들과 함께 걷도록 기도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길을 여시고 닫으시는 주님. 열린 문 앞에서는 감사하게 하시고, 막힌 길 앞에서는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방향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보여 주시는 사람을 보게 하시며, 함께 분별하고 곧바로 순종하게 하소서.
오늘 기도받는 목자들이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이 여시는 길과 닫으시는 길 위에서 양들과 함께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