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Come to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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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 Boston? You’re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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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이 생기면 찾아갈 곳이 있습니다. 행복한 공동체인 워십프론티어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순복이란 예수님께 관심을 끌지 못한 것들이 당신에게도 전혀 관심이 될 수 없을 만큼,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에 혼돈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혼돈이 아예 없을 수는 없고,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닙니다. 혼돈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당신을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지나야만 당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평범한 날들 속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실제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당신은 전혀 쓸모 없는 자일 뿐만 아니라 당신과 관련된 자들에게 커다란 방해거리 밖에 안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성도가 쉬지 않고 싸워야 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바울은 “나는 나의 모든 사역이 그리스도께 순종되도록 철저하게 사로잡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성품이 거룩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죄사함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그 상태에서 계속적인 믿음의 선택을 통해 거룩한 성품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선택은 우리의 자연적인 생명의 생각과 논리에 계속적인 반감을 일으킬 것이며 하나님의 지식을 대항해 날뛰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적개심을 갖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생수의 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흐르실 수 있도록 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사해 같아서 언제나 받기만 하고 절대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 예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확실하게 받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생수의 강을 흘러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보여주시는 모든 진리들은 주께서 우리를 통해 흐르게 하시는 강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 안에 강한 축복의 강물을 흐르게 하십니다.
구원받은 후 처음 단계에서는 주님과 ‘함께’ 깨어 있지 않고 주를 ‘위해’ 깨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삶의 상황들 가운데서 성경의 계시를 통해 주님과 함께 깨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겟세마네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하나가 되자고 제안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정한 선교의 비밀은 “나는 그분의 것이라.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통해 그분의 사역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십시오!
만일 당신이 언제나 당신 자신만을 위해 축복을 움켜쥐고 주님께 그 축복을 부어드리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통해 그들의 지경을 넓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나를 믿든, 그들이 받는 모든 축복은 그들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누가 나를 믿든, 그들이 받는 모든 축복은 그들로부터 벗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삶의 목표는 행복이나 건강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옳고 선하고 고상한 애착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애착들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삶을 다 탕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 애착들을 위축시키셔야 합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은 그를 거룩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영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기쁨은 어떤 기쁨이었습니까? 곧 아버지께서 주님께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똑같은 기쁨을 누리는 분량까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십시오. 거기서 당신의 기쁨을 발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들은 단지 풍성한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곳까지 이끄신 후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의 풍조는 사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유용성으로 그들의 사역의 기초를 삼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당신이 사람을 유용성으로 평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살았던 자들 중 가장 큰 실패자일 것입니다. 성도를 인도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지 당신의 유용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가 주를 위해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끝까지 견고하게 주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역경은 당신의 믿음을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는 계속적인 시험이 있을 것이고 마지막 가장 큰 시험은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싸움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꾼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기도는 나를 바꾸며 나는 상황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구속을 기초로 한 기도가 그 사람이 상황을 보는 눈을 바꾸도록 설정하셨습니다. 기도는 외부적인 것들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향을 바꾸어내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비추어주신 성화 및 여러 문제를 당신이 거부하는 순간, 당신의 영적 생명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계속 진리를 삶에 실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받은 바로 그 빛이 저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에 빠지는 이유는 주님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상의할 때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게 되고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는 당황스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으십시오. 고통, 이별, 슬픔을 당할 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예수님과의 우정은 우리 안에 창조된 새 생명 위에 세워지는 것으로서 옛 생명에 대해 아무 애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과만 나누는 것입니다. 그 우정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며 조금도 흠 없이 맑고 완벽하게 주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기도의 예화는 선한 것을 구하는 선한 자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말할 때 마치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상관없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처럼 말합니다. 결코 당신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주의 뜻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매일 잠이 깨는 첫 순간에 당신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당신은 온종일 잘못된 차원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 그러나 그는”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이 순간이 올 때까지는 나는 성령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정말로 나의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로 거기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다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내가 복 있는 이유는 나의 가난 때문입니다. 만일 내게 의지력도 없고 드러낼 만한 고상한 성향도 없을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는 그 가난을 통해 내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가난뱅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 의식이 자아의식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곳마다 주님께서는 완성된 사역의 안식, 곧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는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완전하도록 온전하게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당장 치료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아의식적 과민성은 무시한다고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치료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자아의식’이 아닌 ‘예수님 의식’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한다면,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우리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배우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보다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실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에 더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속에 슬픔을 자아낼 주님의 거친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향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쉽습니다.
우리도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어떤 특별한 지점에서 주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할 때 주께서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사귐의 역사가 있습니까? 제자도의 한 가지 증표는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 곧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짓기를 멈춘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9절의 의미는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따라 순종하면 우리는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설교노트]
[교회소식]
뉴잉글랜드 교회연합 부흥회 첫날에 “다음 세대를 부흥케 하자”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앞에서 결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세대를 부흥케 하는 워십프론티어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주변에 이끌어 놓으시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 주의해서 보십시오. 이들은 바로 당신이 주님께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람들로서, 이를 알게 될 때 당신은 겸손하게 됩니다. 주께서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정확하게 그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