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QT · 왜 나에게가 아니라, 왜 당신입니까 (Not Why Me, But Why You)

찬양으로 시작하기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오늘의 말씀

고린도후서 4:8-10 (새번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는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는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는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는 아니하고,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데, 이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함께 읽는 말씀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참고)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참고)

말씀 앞에 서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은 고난 속으로 친히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고난도 그 사랑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소서.

나의 고백

저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저를 안으로, 안으로 끌어당겨 결국 저 자신 안에 갇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조언자로서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고난 속으로 들어오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사실 앞에서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기

"왜 나에게?"라는 질문은 저를 세상의 중심에 놓습니다. 그러나 "왜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 이 악한 세상에 들어오셨습니까?"라는 질문은 저를 온전한 크기로 되돌려 놓습니다.

이미 받은 것을 붙잡기

저는 고난이 사라지기를 구하지만, 동시에 이미 제게 주어진 더 나은 것—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을 붙잡아야 함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기쁨

이 깊은 질문이 마음에 자리 잡을 때, 저는 비로소 "제정신"이 됩니다. 세상이 더 이상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저를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의 한 문장

"고난 속에서 던지는 질문은 결국 '왜 나에게'가 아니라 '왜 당신이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까'로 바뀌어야 합니다." — David Powlison, Take Heart

이번 주일 말씀과 함께

"사랑받은 자, 먼저 사랑합니다." — 사랑받은 자는 다가갈 이유를 따로 찾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사랑이 곧 다가갈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들어가며

나는 오늘 "왜 나에게"라는 질문에 머물러 있는가. 내 고난 속에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정말 믿고 있는가. 이번 주일 다가갈 이유를 따로 찾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고난 속으로 친히 들어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질문의 방향을 "왜 나에게"에서 "왜 당신이"로 바꾸어 주소서. 이번 주일, 사랑받은 자로서 이유 없이 먼저 사랑하며 다가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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