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십시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세력과 맞설 때)
중심 구절 / Key Verses
He said, “Take now your son…” —Genesis 22:2
Genesis 22:1-19
(창 22:1-19, 새번역)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보라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노라 _골 1:24
주님의 일꾼은 희생적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과 구속의 실체에 일치됨으로 주께서 그 일꾼을 통해 계속적으로 생명을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일꾼의 인격이 뛰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꾼의 삶의 요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 속에서의 주님의 삶과 죽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말씀은 희생적인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포된 이 말씀을 주님의 구속의 바탕 위에 사용하셔서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새 창조를, 그 말씀을 듣는 자들 안에 행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에 관한 계시 대신에 사람의 삶 속에 나타난 구속의 결과들을 선포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새 생명이 아니라 세련된 영적 문화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그 메시지를 증거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오직 주님만이 그 진리를 듣는 영혼들 안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참 대단하군! 아주 매력적이야!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역사할 기회를 얻겠습니까? 즉, 인간적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은 복음의 선포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복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을 끌면, 그의 호소력은 그의 인격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사람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위험은 언제나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 “나의 기도문”
오늘 읽고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기도문을 아래 답글 창에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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