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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영성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것: 순종을 넘어선 관계
아브라함 시리즈 · 창세기 12장 & 22장 · Boston 청년 & 젊은 가정 대상
하나님은 중심 없는 순종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원하신다.
진정한 믿음은 신조에 동의하거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 질문하고, 상의하며, 씨름하는 것이다.
C1
아브라함의 의지적 순종 — 절반의 성공
창 12, 22 · 믿음의 조상의 위대함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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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종이 어디까지였는지를 직시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붙잡고 하란을 떠남 (창 12)
-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까지 3일을 걸음 (창 22)
-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라 고백 — 준비하시는 하나님
- 믿음의 조상: 피조물을 '친구'라 부르신 하나님의 파격적인 선택
성경 본문에는 채워지지 않은 침묵이 있다. 랍비들이 수천 년간 씨름해온 질문들:
- 사라에게는 왜 말하지 않았는가?
- 3일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는가?
- 이삭은 살아남은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났는가?
- 모리아 이후 하나님은 왜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나?
직장, 진로, 정체성의 기로에서 "그냥 하면 되지"라고 자신을 다독인 적이 있는가? 그 침묵 속에 하나님과의 대화는 있었는가?
자녀를 위한 결정들 — 학교, 이사, 재정 — 을 하나님께 여쭈기보다 "당연히 이래야지"라는 공식으로 처리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
C2
3일간의 침묵 — 소통 없는 순종의 위험
창 22:1-8 · 하나님과도, 가족과도 나누지 않은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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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다 — 가장 가까운 공동체와의 단절
-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다 —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모호한 답만
-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았다 — 소돔을 위해 50인에서 10인까지 담대히 하나님을 설득했던 아브라함이, 정작 자기 아들 앞에서는 침묵했다
- 결과: 아브라함은 홀로 브엘세바로 돌아갔고, 이삭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씨름하셨다. 같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왜 씨름하지 않았는가? 이 비교가 핵심 전환점이다.
"믿음으로 결정했어"라는 말이 실제로는 고독한 독단이었던 적은 없는가? 신앙 공동체와 나누지 않는 "순종"은 순종인가, 고집인가?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상의하는 문화가 있는가? 부모의 신앙 결정이 자녀에게 전달될 때, 그것이 규칙인가 관계인가?
C3
관계의 시험 —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것
창 22 & 창 32 · 야곱의 씨름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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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아들보다 소중한가?'가 아니라 '나와 너는 정말 친구 사이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미드라시 해석: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결국 지시를 거부하기를 원하셨을지 모른다. 아브라함이 했어야 할 말들:
- "주님, 이것은 가나안 신들이 시키는 일입니다. 당신은 여호와이십니다."
- "주님, 제 아들 대신 제 목숨을 취하십시오."
- "주님, 당신은 공의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그 하나님의 모습입니까?"
| 아브라함 (창 22) | 야곱 (창 32) |
|---|---|
| 3일간 침묵, 홀로 결행 | 밤새도록 하나님과 몸으로 씨름 |
| 하나님께 묻지 않음 | "당신이 내게 복을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습니다" |
| 순종은 완벽, 관계는 미완 | 불완전한 인간, 그러나 관계는 깊어짐 |
| 이후 하나님의 침묵 |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뀜 — 씨름하는 자 |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 씨름하는 자 — 을 민족의 이름으로 택하셨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들음이 없으면 순종도 없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완벽한 순종이라도, 관계라는 정황 밖에서 이루어지는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규칙 잘 지키기"가 되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따지고, 물어보고, 씨름한 것이 언제인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신앙이 규칙의 목록인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초대인가?
C4
Kingdom Community — 함께 씨름하는 공동체
믿음의 7중 레퍼토리 · 하나님 나라의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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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씨름도, 공동체와의 소통도 포기했다. 이것이 이중적 관계의 실패다. Kingdom Community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살아 있는 곳이다.
- 1 하나님과의 관계 — 기도, 씨름, 경청
- 2 하나님의 말씀(성경)과의 관계 — 살아있는 계시
- 3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 — 교회 공동체
- 4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 — 선교적 삶
- 5 피조 세계와의 관계 — 청지기 의식
- 6 상징·예술·사물과의 관계 — 예배의 확장
- 7 영적 세계와의 관계 — 보이지 않는 실재
보스턴은 세계적 수준의 지성과 고독이 공존하는 도시다.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이 시대 최악의 질병은 외로움이다. Kingdom Community는 그 외로움에 대한 복음의 답이다.
소그룹 안에서 "나는 이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앙의 씨름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가?
가정이 작은 Kingdom Community가 될 수 있다. 식탁에서의 대화, 자녀와 함께하는 기도가 신앙의 씨름의 공간이 되고 있는가?
C5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지금의 삶
부활절 신앙 · 관계의 에덴 동산으로서의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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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정의한다면, 영원은 관계의 에덴 동산이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공동체와 소통하고, 이웃을 품는 삶이 바로 그 천국을 연습하는 것이다.
| 신념 (Belief) | 믿음 (Faith) |
|---|---|
| 지적 동의, 고개를 끄덕임 | 내 존재를 맡김, "안에 들어가는 것" |
| 명제, 신조, 원칙의 수용 | 인격이신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 |
| 플라톤적 사고 | 히브리적 관계 (베레쉬트, 쉐마) |
| 정적(靜的), 현상유지 | 동적(動的), 변화를 낳음 |
* "believe"의 어원: be(존재) + life(삶) → 내 존재를 삶에 맡기다. "내 마음을 내주다, 사랑하다"
전도는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사람들을 예수님과의 관계로 초청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