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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오시기 전, 여러분 중 누군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을 깨웠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밥을 지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교회까지 가족을 데려왔을 것입니다.
그 행동에 대해 아무도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내일 또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C.S. Lewis가 말한 네 가지 사랑 중 첫 번째, Storge(스토르게), 즉 '애정'을 다룹니다. Storge는 화려한 사랑이 아닙니다. 특별히 선택하지 않아도 형성되는 사랑입니다. 공유된 시간, 반복된 존재,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계속되는 헌신. 그것이 Storge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계속된 반복입니다.
거대한 사랑의 지형을 만든다.
이 한 문장을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먼 거리에서 아들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아버지는 매일 그 길을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떠난 그날부터,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다림.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반복. 그것이 쌓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먼 거리에서도 아들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Storge입니다. Lewis는 말합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존재하는 가장 낮은 온도의 사랑. 그러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Storge는 졸지 않는 반복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도, 우리가 돌아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계속 서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여러분을 데려온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 번만 연락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번 기도했고, 여러 번 생각했고, 여러 번 망설이다 연락했을 것입니다.
그 반복이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번의 화려한 행사로 확장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복으로 확장됩니다.
Storge는 투자가 되지만,
기대 없이 지속될 때 그것은 Agape의 통로가 된다.
탕자의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큰아들입니다.
큰아들도 반복했습니다. 매일 밭에 나갔고, 매일 일했고, 매일 아버지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반복에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보상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순간, 반복은 분노가 됩니다.
우리는 헌신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장부가 생깁니다. 내가 한 것들의 목록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장부가 충족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분노가 터집니다. 가족에게서, 오래된 교우에게서, 함께 일한 동역자에게서.
Storge가 Agape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동사는 '견딤'입니다. 기대 없이 계속하는 것, 장부를 덮는 것, 그것이 Storge를 정화시키는 자리입니다.
목자로 섬기시는 분들, 매주 목원을 챙기십니다. 연락하고, 기도하고, 준비합니다. 그런데 반응이 없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새로 온 사람이 더 주목받는 것 같을 때 — 그 순간 마음속에 무엇이 올라옵니까?
그것이 바로 큰아들 증후군입니다. 그 감정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천국을 연습하는 공동체는 장부 없이 반복하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애정을 넘어선
하나님의 조건 없는 환대였다.
아버지가 달려갑니다. 중동 문화에서 연장자가 뛰는 것은 수치입니다. 겉옷을 걷어 올리고, 맨발로, 체면도 없이 달려가는 것. 그런데 아버지는 뛰었습니다.
이것은 한 번의 감정적 폭발이 아닙니다. 쌓인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매일의 기다림이, 매일의 시선이, 매일의 반복이 이 한 순간에 폭발한 것입니다.
아들은 준비한 대사가 있었습니다. "종 중의 하나로 삼으소서." 자격을 협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포옹이 그 대사를 덮어버립니다. 자격을 묻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안았습니다.
조건이 충족된 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조건 이전에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Storge가 Agape를 만나는 순간, 익숙함은 소유욕이 아닌 조건 없는 환대가 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공동체는 여러분의 자격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태로 오셨든,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 자체가 이미 환대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격을 검증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뛰어나오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연습하는 공동체입니다. 천국은 장부가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자격을 묻지 않는 곳입니다. 천국은 아버지가 뛰어나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 땅에서 먼저 연습합니다.
반복을 포기하는 것은 안전합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죽음입니다.
매일 기도하는 자녀의 이름이 있습니까. 여러 번 연락했지만 반응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알아주는 사람 없이 계속하는 섬김이 있습니까.
그 자리가 Storge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Agape를 요청하십시오. 기대 없이 계속하게 해달라고, 장부를 덮게 해달라고, 아버지처럼 달려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여러분을 향해 서 계십니다. 매일. 반복해서. 조건 없이.
그러나 이번엔 Agape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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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씨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자만이,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다
아브라함 시리즈 · 창세기 22장 & 32장 · Boston 청년 & 젊은 가정 대상
하나님은 중심 없는 순종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원하신다.
진정한 믿음은 신조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 질문하고, 상의하며, 씨름하는 것이다.
서
서론 — 아브라함은 시험을 통과했는가?
창 22 · 절반의 성공, 그리고 미결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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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그의 이름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입니다. 하란을 떠난 것도, 모리아 산을 오른 것도 —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순종입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채워지지 않은 침묵들이 있습니다.
- 사라에게는 왜 말하지 않았는가?
- 3일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는가?
- 모리아 이후 하나님은 왜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나?
- 이삭은 살아남은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났는가? (성경: 만나지 못했다)
랍비들이 수천 년간 씨름해온 질문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질문 앞에 함께 서겠습니다.
직장, 진로, 정체성의 기로에서 "그냥 하면 되지"라고 자신을 다독인 적이 있는가? 그 침묵 속에 하나님과의 대화는 있었는가?
자녀 학교, 이사, 재정 — 하나님께 여쭈기보다 "당연히 이래야지"라는 공식으로 처리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
C1
3일간의 침묵 — 소통 없는 순종의 위험
창 22:1-8 · 하나님과도, 가족과도 나누지 않은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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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다 — 가장 가까운 공동체와의 단절
-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다 —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모호한 답만
-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았다 — 소돔을 위해 50인→10인까지 설득했던 아브라함이, 정작 자기 아들 앞에서는 침묵했다
- 결과: 아브라함은 홀로 브엘세바로 돌아갔고, 이삭은 아버지를 살아생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난 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기"를 배웠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혼자, 하나님 앞에. 그런데 그는 거기서 침묵만 했습니다. 성숙한 고립은 씨름의 전제 조건입니다 — 씨름 자체가 아닙니다.
지난 주: 하나님 앞에 앉아 있기 — 위로를 받는 시간
이번 주: 하나님 앞에 말 걸기 — 사명을 붙잡는 시간
성숙한 고립이 씨름의 공간을 만들었다면, 이제 그 공간에서 씨름을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결정했어"라는 말이 실제로는 고독한 독단이었던 적은 없는가? 신앙 공동체와 나누지 않는 "순종"은 순종인가, 고집인가?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상의하는 문화가 있는가? 부모의 신앙 결정이 자녀에게 전달될 때, 그것이 규칙인가 관계인가?
C2
관계의 시험 —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것
창 22 & 창 32 · 야곱의 씨름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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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아들보다 소중한가?'가 아니라
'나와 너는 정말 친구 사이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미드라시 해석: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결국 지시를 거부하기를 원하셨을지 모른다. 아브라함이 했어야 할 말들:
- "주님, 이것은 가나안 신들이 시키는 일입니다. 당신은 여호와이십니다."
- "주님, 제 아들 대신 제 목숨을 취하십시오."
- "주님, 당신은 공의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그 하나님의 모습입니까?"
그는 그저 고분고분 "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질문은 "어디에서 할까요?"였습니다.
| 아브라함 (창 22) | 야곱 (창 32) |
|---|---|
| 3일간 침묵, 홀로 결행 | 밤새도록 하나님과 몸으로 씨름 |
| 하나님께 묻지 않음 | "복을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습니다" |
| 순종은 완벽, 관계는 미완 | 불완전한 인간, 그러나 관계는 깊어짐 |
| 이후 하나님의 침묵 | 이름이 '이스라엘'(씨름하는 자)로 바뀜 |
* 하나님은 '씨름하는 자'라는 이름을 민족의 이름으로 택하셨다. 씨름은 불경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씨름 후에 순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씨름 없이 순종했습니다. 씨름 후의 순종이 더 깊습니다. 그것이 관계입니다.
들음이 없으면 순종도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외형적 순종이라도, 관계라는 정황 밖에서 이루어지는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규칙 잘 지키기"가 되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따지고, 물어보고, 씨름한 것이 언제인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신앙이 규칙의 목록인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초대인가?
C3
씨름의 성경적 모델들 — 어떻게 씨름하는가
모세 · 예레미야 · 예수님 · 루터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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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가 씨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네 가지 모델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 백성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세 번이나 하나님을 설득했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설득에 "뜻을 돌이키셨다."
씨름은 불경한 게 아닙니다. 관계가 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득에 져 주기를 좋아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당신이 저를 속이셨습니다"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불신앙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씨름 끝에 "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감당할 수 없나이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씨름이 사명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사명이라고 여겼던 것이 막힐 때, "주님 이게 왜 이렇습니까"라고 항의할 수 있는 관계인가?
육아, 직장, 사역이 겹칠 때 — 하나님께 솔직하게 "이건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이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시더니"(막 1:35) — 성숙한 고립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는 같은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같은 예수님입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 선 분이, 이번엔 씨름하셨습니다. 성숙한 고립 → 씨름 → 더 깊은 순종.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관계의 흐름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달은 것은 조용한 서재에서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원 탑에서 로마서를 붙잡고 몇 달을 씨름한 끝이었습니다.
성숙한 고립(혼자 하나님 앞에 앉기) → 씨름(말씀과 하나님께 질문하기) → 돌파(계시). 종교개혁은 씨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C4
Kingdom Community — 함께 씨름하는 공동체
아브라함의 이중 실패 · 보스턴의 고독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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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두 가지를 동시에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 그리고 공동체(사라, 이삭)와의 소통. 이것이 이중적 관계의 실패입니다.
Kingdom Community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개인들이, 서로의 씨름을 나누는 공동체.
테레사 수녀는 "이 시대 최악의 질병은 외로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스턴은 세계적 수준의 지성과 고독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하버드, MIT, 수많은 병원과 연구소 —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자 씨름하고 있습니까.
하버드 학생이 교수에게 "이 논문 주제가 맞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그냥 제출하는 것의 차이. 교수와 대화가 없으면 지도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보고서 제출이 아니라 지도교수와의 면담이 될 때, 사명이 구체화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 — 기도, 씨름, 경청
-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 — 살아있는 계시
-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 — 교회 공동체
-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 — 선교적 삶
- 피조 세계와의 관계 — 청지기 의식
- 상징·예술·사물과의 관계 — 예배의 확장
- 영적 세계와의 관계 — 보이지 않는 실재
소그룹 안에서 "나는 이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신앙의 씨름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가?
가정이 작은 Kingdom Community가 될 수 있다. 식탁에서의 대화, 자녀와 함께하는 기도가 신앙의 씨름의 공간이 되고 있는가?
C5
실천 — 씨름하는 삶으로
지난 주 → 이번 주 → 이번 주간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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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 성숙한 고립 | 이번 주 — 하나님과의 씨름 |
|---|---|
| 하나님 앞에 앉아 있기 | 하나님 앞에 말 걸기 |
| 5-15분 침묵, 시편 읽기 | 종이에 질문을 써서 하나님께 드리기 |
| 위로와 인정을 받는 시간 | 사명을 붙잡고 확인하는 시간 |
| 사람보다 하나님께 먼저 | 하나님과 상의 후 공동체와 나누기 |
- ① 종이에 쓰기 — "주님, 저는 지금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두렵고 이해가 안 됩니다." 답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말을 거는 훈련
- ② 씨름의 말씀 읽기 — 이번 주 시편 22편 또는 예레미야 20장을 소리 내어 읽기. 항의와 씨름의 기도가 어떻게 드려지는지 보기
- ③ 공동체와 나누기 — 씨름은 결론이 아니라 관계의 과정. 내 씨름을 한 사람과 나누기 (소그룹, 배우자, 친구)
씨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붙잡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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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성경 본문 빠른 참조
설교 중 사용할 구절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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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인터액티브 설교 자료
2/22
관계의 영성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것: 순종을 넘어선 관계
아브라함 시리즈 · 창세기 12장 & 22장 · Boston 청년 & 젊은 가정 대상
하나님은 중심 없는 순종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원하신다.
진정한 믿음은 신조에 동의하거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 질문하고, 상의하며, 씨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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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의지적 순종 — 절반의 성공
창 12, 22 · 믿음의 조상의 위대함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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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종이 어디까지였는지를 직시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붙잡고 하란을 떠남 (창 12)
-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까지 3일을 걸음 (창 22)
-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라 고백 — 준비하시는 하나님
- 믿음의 조상: 피조물을 '친구'라 부르신 하나님의 파격적인 선택
성경 본문에는 채워지지 않은 침묵이 있다. 랍비들이 수천 년간 씨름해온 질문들:
- 사라에게는 왜 말하지 않았는가?
- 3일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는가?
- 이삭은 살아남은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났는가?
- 모리아 이후 하나님은 왜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나?
직장, 진로, 정체성의 기로에서 "그냥 하면 되지"라고 자신을 다독인 적이 있는가? 그 침묵 속에 하나님과의 대화는 있었는가?
자녀를 위한 결정들 — 학교, 이사, 재정 — 을 하나님께 여쭈기보다 "당연히 이래야지"라는 공식으로 처리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
C2
3일간의 침묵 — 소통 없는 순종의 위험
창 22:1-8 · 하나님과도, 가족과도 나누지 않은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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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다 — 가장 가까운 공동체와의 단절
-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다 —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모호한 답만
-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았다 — 소돔을 위해 50인에서 10인까지 담대히 하나님을 설득했던 아브라함이, 정작 자기 아들 앞에서는 침묵했다
- 결과: 아브라함은 홀로 브엘세바로 돌아갔고, 이삭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씨름하셨다. 같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왜 씨름하지 않았는가? 이 비교가 핵심 전환점이다.
"믿음으로 결정했어"라는 말이 실제로는 고독한 독단이었던 적은 없는가? 신앙 공동체와 나누지 않는 "순종"은 순종인가, 고집인가?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상의하는 문화가 있는가? 부모의 신앙 결정이 자녀에게 전달될 때, 그것이 규칙인가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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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시험 —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것
창 22 & 창 32 · 야곱의 씨름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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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아들보다 소중한가?'가 아니라 '나와 너는 정말 친구 사이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미드라시 해석: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결국 지시를 거부하기를 원하셨을지 모른다. 아브라함이 했어야 할 말들:
- "주님, 이것은 가나안 신들이 시키는 일입니다. 당신은 여호와이십니다."
- "주님, 제 아들 대신 제 목숨을 취하십시오."
- "주님, 당신은 공의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그 하나님의 모습입니까?"
| 아브라함 (창 22) | 야곱 (창 32) |
|---|---|
| 3일간 침묵, 홀로 결행 | 밤새도록 하나님과 몸으로 씨름 |
| 하나님께 묻지 않음 | "당신이 내게 복을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습니다" |
| 순종은 완벽, 관계는 미완 | 불완전한 인간, 그러나 관계는 깊어짐 |
| 이후 하나님의 침묵 |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뀜 — 씨름하는 자 |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 씨름하는 자 — 을 민족의 이름으로 택하셨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들음이 없으면 순종도 없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완벽한 순종이라도, 관계라는 정황 밖에서 이루어지는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규칙 잘 지키기"가 되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따지고, 물어보고, 씨름한 것이 언제인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신앙이 규칙의 목록인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초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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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Community — 함께 씨름하는 공동체
믿음의 7중 레퍼토리 · 하나님 나라의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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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씨름도, 공동체와의 소통도 포기했다. 이것이 이중적 관계의 실패다. Kingdom Community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살아 있는 곳이다.
- 1 하나님과의 관계 — 기도, 씨름, 경청
- 2 하나님의 말씀(성경)과의 관계 — 살아있는 계시
- 3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 — 교회 공동체
- 4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 — 선교적 삶
- 5 피조 세계와의 관계 — 청지기 의식
- 6 상징·예술·사물과의 관계 — 예배의 확장
- 7 영적 세계와의 관계 — 보이지 않는 실재
보스턴은 세계적 수준의 지성과 고독이 공존하는 도시다.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이 시대 최악의 질병은 외로움이다. Kingdom Community는 그 외로움에 대한 복음의 답이다.
소그룹 안에서 "나는 이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앙의 씨름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가?
가정이 작은 Kingdom Community가 될 수 있다. 식탁에서의 대화, 자녀와 함께하는 기도가 신앙의 씨름의 공간이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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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지금의 삶
부활절 신앙 · 관계의 에덴 동산으로서의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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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정의한다면, 영원은 관계의 에덴 동산이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공동체와 소통하고, 이웃을 품는 삶이 바로 그 천국을 연습하는 것이다.
| 신념 (Belief) | 믿음 (Faith) |
|---|---|
| 지적 동의, 고개를 끄덕임 | 내 존재를 맡김, "안에 들어가는 것" |
| 명제, 신조, 원칙의 수용 | 인격이신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 |
| 플라톤적 사고 | 히브리적 관계 (베레쉬트, 쉐마) |
| 정적(靜的), 현상유지 | 동적(動的), 변화를 낳음 |
* "believe"의 어원: be(존재) + life(삶) → 내 존재를 삶에 맡기다. "내 마음을 내주다, 사랑하다"
전도는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사람들을 예수님과의 관계로 초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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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짜 sermonDate 를 과거 날짜로 바꾸어 테스트 진행
💛 "Even if you leave in May — having courageously exposed your weakness here is an eternal victory."
💛 "5월에 떠날지라도, 이곳에서 용기있게 연약함을 드러낸 경험은 영원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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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n if you leave in May — having courageously exposed your weakness here is an eternal victory."
💛 "5월에 떠날지라도, 이곳에서 용기있게 연약함을 드러낸 경험은 영원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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