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고찰                                                                                                          June 4, 2016

(논리적으로 동성애에 관해서 정리된 설득력있는 가사원 최영기 원장님 글입니다.)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짐으로 인해 미국 크리스천들이 당혹해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한 사람이 “한국을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멀지 않아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인권문제로 봅니다. 동성애자들을 과거의 노예나 여성들처럼 억압받는 약자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흑인과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크리스천들은, 동성애가 성경에 죄라고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구약의 정결법에 지나지 않고, 폭력적인 동성애를 금지한 것이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라면 동성애가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데서 나옵니다. “Slave, Women, and Homosexual(William J. Webb 저)”라는 책이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바른 성경 해석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구속사적인 발전(redemptive movement)’이라는 성경 해석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실 때에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이행할 만큼만 주셨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관한 계명은 유동적으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 방향으로 변화 발전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인 발전에 의한 해석 방법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혼에 관해 율법학자들과 논쟁이 벌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율법학자들이,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을 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여 준 것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마태 19:8).”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이혼할 때 이혼증서라도 써주라고 한 것이지, 이혼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사적인 발전은 노예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 주위 국가는 노예를 인간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았습니다. 때려도 좋고, 심지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노예에게 폭력을 가하여 눈을 멀게 하거나 이를 부러뜨리면 노예에게 자유 신분을 허락하라고 하였습니다(출 21:26-27). 노예에 관해 신약에 와서는 더 큰 발전을 보입니다. 노예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드렸습니다(몬1:16).

노예에 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무엇인가?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신분에 의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 그러므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크리스천들이, 신약과 구약이 노예 제도를 인정하니까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성에 관해서도 이런 구속사적인 발전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여성들이 좀 더 인격적인 대접을 받습니다. 여종을 돈을 주고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남에게 팔지 말고 웃돈을 얹어 여자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든지(출 21:7-8), 이혼 할 때에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하는 것(신 24:1-3) 등이 예입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 더 큰 발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인 마리아가 남성들과 더불어 말씀을 배우는 것을 허락하셨고(눅 10:39-42)  사도 바울은 아내가 남편의 성적인 욕구를 채울 의무가 있듯이, 남편도 아내에게 같은 의무가 있다고 가르칩니다(고전 7: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관한 기록에서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인 아굴라 이름 앞에 놓인 것을 보면, 아내가 남편보다 더 사역에 적극적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에 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남성과 여성이 고유한 특성은 간직하되 신분과 사역에 있어서는 동등해지는 것입니다(갈3:28). 그러므로 성경에서 여성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하니까 (딤전2:12)  오늘날도 여성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표로 그리자면 사회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명은 이렇게 발전해 갑니다. 고대사회 관습=> 구약의 계명=> 신약의 계명=> 오늘날의 윤리=> 하나님이 궁극적인 뜻.

그런데 노예제도나 여성 인권과는 달리, 동성애에 관해서는 이런 구속사적인 발전을 볼 수 없습니다. 동성애에 관한 금지 조항은, 자녀를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지 말라는 계명과, 짐승과 성관계를 갖지 말라는 끔찍한 두 계명 사이에 있습니다(레 18:21-23).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동성애를 인간이 타락한 모습의 가장 큰 예로 들고 있고(롬 1:28-29), 동성애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아 말합니다(고전 6:9-10). 이처럼 구약과 신약 사이에 구속사적인 발전이 안 보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에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오늘날이나,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성애 성향 자체가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선천적으로 술의 유혹에 약해도 술을 안마시면 술주정뱅이가 아니듯이, 동성애 성향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지적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라는 것을 알아야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해야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동성애자를 매도하지 말고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