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응답에 대해서…

May 14, 2017

교회 공동체를 섬기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도응답입니다. 목사로서 형제 자매들의 기도제목들이 응답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 일처럼 기쁩니다. 주님께서 우리 공동체와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주에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기도응답을 많이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큰 격려가 됩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형제 자매들의 기도는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얼마나 낙심되었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더 기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소원하는 대로만 응답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렇게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기도응답 자체보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종교들이나 무속종교들도, 우리와 동일한 기도가 있습니다. 사업이든 직장이든 결혼이든, 무엇이든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구하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 그들의 신앙과 기도 가운데도 존재합니다.

기독교의 기도와 사종교의 기도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단 말입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모든 사종교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원하는 바가 응답되었느냐 안되었느냐입니다.  다시말하면, 기도의 대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상이 누구든, 어떤 존재, 어떤 인격이냐는 상관없이 그저 소원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응답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기도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응답을 경험하면서, 때로는 나의 소원대로 응답되지 못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며, 그분을 발견하는 것이 기독교 기도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기계적인 공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약속이, 마치 기도만 하면,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처럼 약속된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계는 입력한 대로 그 결과가 나오도록 되어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계적인 결과를 얻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하에서, 우리의 소원과 강청을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분의 주권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응답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3번이나 하나님께 몸의 가시를 없애주시도록 치유 기도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더 큰 뜻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고백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가운데 하나는,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롯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되지 않아 낙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히려 소망을 가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은 보지 못하나, 후에 하나님이 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선을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경험하며,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을 더 깨달아야 더 큰 축복입니다. 원하는대로 응답되지 못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며 사랑하는 우리의 반응을 통해서, 우리는 더 크고 아름다운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큰 축복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