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축 4기둥

목회자 칼럼 / 교회의 3축과 4기둥

2019년 워프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 '영혼구원하며 제자만드는 교회'로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다음과 같은 3축과 4기둥이 튼실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4기둥은 원칙과 정신을 의미하며, 3축은 하드웨어를 뜻합니다.

4가지 기둥중에, 첫번째 기둥은 "교회 존재 목적"입니다.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을 교회 존재 목적으로 삼습니다(마 28:19-20). 둘째 기둥은 제자 훈련 방법입니다. 가르쳐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보여서 제자를 만듭"니다(막 3:14-15). 셋째 기둥은 성경적인 교회 "사역 분담"입니다. 목회자는 기도하고, 말씀 전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성도들은 목양을 하고 교회를 세웁니다(엡 4:11-12). 넷째 기둥은 "종이 되는 리더십"입니다(막 10:44). 남을 성공시켜주는 것을 리더십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렇게 원칙과 정신을 표현한 4기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기 위해서 3축이 필요합니다. 3축은 사람에게 있는 지정의(知情意)를 터치해주기때문에 진정한 회심이나 영적 성장을 이루도록 합니다. 한마디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게 됩니다.

지정의를 터치해 주는 이 세 가지, 즉 “목장 모임”, “삶 공부”, “주일 연합 예배”를 3 축이라고 부릅니다. VIP들은 목장 모임을 통한 섬김을 맛보면서 정적인 면이 터치되어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사라집니다. 생명의 삶을 비롯한 삶공부를 통하여 복음을 이해하고 신앙 성장에 필요한 정보를 공급받습니다. 연합 주일 예배를 통하여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2019년 워프 교회와 목장에 4기둥과 3축이 좀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나무 줄기가 튼튼해져서 활기가 넘치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1-13-2019 최정섭)


따뜻한 우리

목회자 칼럼 / '따뜻한 우리 워프 공동체’

목사로서 저는 지난 한해동안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워프교회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미국 동부의 북쪽 도시 보스톤! 이곳으로 오기로 한 후에, 타지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눈과 추위가 보스톤에 몰아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에 와 보니, 어떤 분들은 이곳에 살기 시작한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에서 떠나고 싶다는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의 추운 날씨와 긴 겨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따뜻한(더운?) 텍사스에서 수년을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여러 주에서 살아본 분이 말하길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콜로라도에서도 살아 보았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사는 분들이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꿈의 장소'라는 하와이 섬에서도 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년내내 덮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를 유지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도 여러분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러한 환경에 대한 인식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 쉽게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부가 아무리 추워도, 보스톤의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따뜻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이곳은 진정한 의미에서 따뜻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 따뜻한 분들을 만나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따뜻해지면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리며 이곳에 왔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워프에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저희 가족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서로 서로를 향하여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고 새해가 추운 겨울과 함께 시작되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워프 가족공동체의 사랑으로 인해 따뜻함을 많이 느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12-30-18 /최정섭)


분별

목회자 코너 / 분별

* 로버트 조너스 라는 사람은 친구인 헨리 나우엔을 통해
자신의 삶과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속도를 늦추고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해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뭔지.
사람들이 행복해지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이 뭔지 물어야 해요.
이것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신뢰한다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내려가는 방향으로 목표를 조정해야 해요."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무엇을 따라갈지 알지 않겠어요?
당신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예요.
내면에서 들리는 사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그 목소리가 당신을 인도해줄 거예요. 우리가 다 그렇듯이,
다른 목소리, 특히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꼼짝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신뢰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분명해질 거예요.
당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다른 목소리로부터 조금은 벗어나게 될 겁니다.
당신 자신이나 지금 살고 있는 문화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존재가 될 거예요"

"이제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갈2:20)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 15:10)"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빌 2:5)"


새가족반

목회자 칼럼 / "새가족반" 소개

10월 첫주부터 시작한 생명의 삶공부가 이제 3번의 강의만 남겨 놓았습니다. 생명의 삶공부를 수강하는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함께 기도하며 응원해 주신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인도하는 목사나 참여하는 성도님들에게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삶공부가 되도록 끝까지 기도부탁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명의 삶공부"가 교회의 든든한 기초를 놓은 과정이 되도록 내년에도 순조로이 진행 될 수 있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최근 2주동안 삶공부 주제는 '교회'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에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교회 등록 과정'인 '새가족반'의 필요성 입니다. 왜냐하면, 워십프론티어 라는 교회는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So then you are members of the household of Go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가족반'은 매월 첫주에 시작하여 4주간 계속 됩니다. 주일 예배와 쏠푸드를 마치면 담임목사가 맡아서 진행합니다. 이 과정의 핵심은 '마음 나누기'와 '경청 하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첫 주에는 참석자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마음 나누기'를 하고, 둘째 주에는 담임목사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셋째 주에는 교회의 비젼을 나누며 '교회의 주인인 예수님의 마음'을 나누고, 넷째 주에는 ‘예수 영접 모임’을 갖습니다.

이 과정 중에서 독특한 것은 첫 주에 있는 "방문자 자기 소개 시간"입니다. 새가족반을 진행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많은 경우에는 방문자들에게 '교회 소개'를 먼저 하는데, 오늘 소개하는 새신자반에서는 먼저 '방문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4주차에 있는 예수 영접 반을 갖게 되는데, 교회를 다닌 경력이 있었던 사람은 반드시 참석하도록 하지만, VIP에게는 선택권을 주어 마음 준비가 되었을 때 참석하도록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워십프론티어 교회안에 새가족반이 잘 정착되도록 도와주셔서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믿음의 가족'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총새에 불이 붙듯

목회자 칼럼 /  물총새에 불이 붙듯 ( As Kingfishers Catch Fire  by Gerard Manley Hopkis )

As kingfishers catch fire,
dragonflies draw flame;
As tumbled over rim in roundy wells
Stones ring; like each tucked string tells, each hung bell's
Bow swung finds tongue to fling out broad its name;
Each mortal thing does one thing and the same:
Deals out that being indoors each one dwells;
Selves — goes itself; myself it speaks and spells,
Crying Whát I dó is me: for that I came.

I say móre: the just man justices;
Keeps grace: thát keeps all his goings graces;
Acts in God's eye what in God's eye he is —
Chríst — for 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
Lovely in limbs, and lovely in eyes not his
To the Father through the features of men's faces.

물총새에 불이 붙고,
잠자리 날개가 빛과 하나 되듯,
우물 안으로 굴러든 돌이 울리고,
켜진 현들이 저마다 말하고, 흔들리는 종이
자신의 소리를 널리 퍼드리듯,
모든 피조물은 한 가지 같은 일을 한다.
각자 내면에 거주하는 제 존재를
밖으로 내 보낸다.
자기 스스로 발현한다. 그것이 '나'라고 명시한다.
'내가 하는 것이 나이며, 그 때문에 내가 왔다'고 외친다.

더 있다. 의로우신 그분은 의를 행하고,
은혜도 지키시니 그 모든 행위가 은혜롭다.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시는 그분,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수만 곳을 다니시며,
아름답게 노니시기 때문이다. 자기 눈이 아닌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아버지에게 아름답게

* 출처 : 물총새에 불이 붙듯, 유진 피터슨 저

이웃을 보라

목회자 칼럼 /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보라

랍비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새벽 시간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겠느냐?”

랍비의 한 제자가 말했다.
“멀리서 개와 양을 구분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요.”
“아니다.”
랍비의 대답이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구분할 수 있을 때입니까?”
다른 제자가 물었다.
“아니다.”
랍비가 말했다.  

“그럼 말씀해주십시오.”
제자들이 말했다.
현명한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다른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너희 형제나 자매를 알아볼 만큼
너희 안에 빛이 충만할 때다.
그때까지는 밤이고,
아직 우리에게 어둠이 있다.”

-인용글 / 헨리 나우엔-



감사 주일

인용 /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선물을 받다

목회자 칼럼 / 선물을 받다

고향에 가면 오랜 세월동안 익숙했던 자리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화문당'이라는 기독교 서점 입니다. 고등학교 학생때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다닐 때쯤에 제 고향 마을 형님이 그 서점의 새 주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도, 그리고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고향에 갈때마다 저는 이곳을 방문합니다.

이번에도 청주에 있는 동안 '화문당'을 방문했습니다. 우리교회 주일학교에 필요한 '가스펠 프로젝트'라는 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을 책 "한 권이나  두 권"을 구입하려는 마음도 갖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책을 사고 싶지만, 몇권만 사도 꽤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비행기 규정에 맞는 무게를 맞추기 위해 많은 책을 살 수 가 없습니다.

화문당을 운영하는 장로님과 권사님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두분은 성품이 참으로 따뜻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서점에서 이십년 넘게 일하시고 있는 또다른 권사님도 저를 너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서점에 방문하기 전에 '가스펠 프로젝트'라는 교재가 있는가 문의하고 싶어 전화를 했을 때도 제 목소리만 듣고도 저를 알아보셨던 분입니다. 서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맞보았습니다. 보스톤 우리 교회에 대하여 궁금해 하셔서 서로를 아껴주며 사랑하는 분들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산하고 서점을 나오려하는데, 제가 보려는 책은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면서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은 단지 원하는 책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 만이 아니라 저에게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는 두분 권사님의 모습 때문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먼 곳에서 찾아온 친 동생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주시려는 그 마음을 두 분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것만이 아니라 이번 방문을 통하여 너무나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을 통하여 다시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저를 통하여 지구 반대편 미국 동부의 북쪽 땅에 조금씩 흘러 갈 것입니다.  다시한번 이 자리를 빌어 저에게 사랑과 호의와 선물을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최정섭목사

목자와 양

목회자 칼럼 / 목자와 양

약속된 치료를 받기 위해서 한국에 왔습니다. 치료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 짧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자리를 비웠지만 각자 맡은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워프가족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안에서 풍성하고 은혜스로운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목요일에 저는 대학에서 같이 성경공부를 했던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현재 그 형제는 A국에서 십수년을 선교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캠퍼에서 저는 그 형제의 '목자'이었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성경공부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던 사이었는데, 삼십년이 지나서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복음을 붙잡고 살다가 다시 만났습니다.

형제와 교제하면서 선교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인이 수천명도 되지 않은 나라에서 몇몇 가정과 팀을 이루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수고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기회가 주어지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썻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작은 한글학교의 교장으로 섬겼는데, 한류 열풍이 불어오면서 한글이 제2외국어로 지정되어,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형제를 통하여 한므나를 받은 청지기가 열므나를 남긴 것과 같이 풍성히 열매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사했던 것은 그 형제와 그 팀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신실하게 섬김을 다하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어려운 상황속에서 그 자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붙잡고 그 자리를 지켜내려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보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가 만난 후 찾아간 곳은 상일동의 카페 에클레시아 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를 응원해 주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목자가 되고, 그들은 나의 양이 될 뿐만 아니라, 다시 나의 동역자가 되고 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임을 경험하였습니다. *11/04/2017 최정섭

작은 채플 기도

목회자 칼럼 / 작은 채플안에서의 기도

지난 수요일 아침 날씨는 좀 쌀쌀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나서, 잠시 보스톤 칼리지(BC)에 들렸다.  차에서 내려 처음 본 건물은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였다. 혹시나 하고 교회 문을 열어 보았는데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라도 들어가서 기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가 없었다.


교회를 지나 조금 더 가니 학교 이름이 크게 써져 있는 담을 따라 학교 안으로 이어져 있는 길에 잘 정돈된 단풍나무들이 멋있게 이어져 있었다. 학교 배치도를 살핀 후 도서관(O'neill Library)이 있는 건물을 찾으며 나도 학생들을 따라 움직였다. 처음 찾아 온 곳이기도 했지만, 왠지 걸을수록 낯선 기분이 더 들었다. 


그런데, 쌀쌀함을 피해 잠시 들어간 라운지의 문앞의 테이블에 우리 교회 청년이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우 낯선 곳이 었는데, 잠시 만나 형제를 통해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되었다. 도서관을 잠시 둘러 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동상이었다. Saint Ignatius Loyola (1491-1556), 카톨릭 예수회를 시작한 성인의 동상이다. BC는 예수회에 속한 대학이다. 

로욜라 동상이 서있는 학교는 나에게는 사실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 30년전에 대학을 다니면서 아침마다 몇몇 학생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던 곳이 료욜라 동상앞의 야외 테이블이었었다. 카톨릭 예수회에 속한 대학은 학교의 외형뿐만 아니라 시스템까지도 나름대로의 짠짠함을 갖고 있다. 개교회를 지향하는 개신교의 입장에서 전체 교회가 한 시스템안에서 움직이는 카톨릭교회를 바라볼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짠짠함과 같은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세월이 30년이 지났는데 왠지 오늘 느끼는 감정은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이 학교에 다니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하게 세워주십시오"

돌아오는 길에, 다시한번 처음에 문을 두르렸던 교회의 문을 열어보았다. 여전히 닫혀 있었다. 잠시라도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냥 가야하나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관리하는 분을 만나 지하에 있는 작은 채플에 들어갈 수 있었다. 30년전에 난 학교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 종종 가곤 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에게 맡겨진 형제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그 기억을 되살리면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앞에 지금 주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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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세가지 속성

목회자 칼럼 / 복음의 세가지 속성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여겨 아래 내용을 소개합니다. 우리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복음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를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비워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셨으며 친히 종이 되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희생 제물로 죽으셨다.

그분은 새로워질 만물의 첫 열매로서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Simon Ganhercole)


'위에서 아래로 임함' (Upside-Down), 성육신

복음 안에서 가치의 역전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압제 받는 사람이 부자와 유명한 사람들, 교만한 사람들 보다위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유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은 왕이셨느나 섬기셨고, 권력을 강화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셔서 죄에 대해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잃으므로 모든 것을 얻으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종류의 섬김 공동체를 창조하셨다.


'안에서 바깥으로 임함' (Inside-Out), 속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다. 이 구원은 값진 선물이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은혜로 값없이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된다면, 비로소 내면의 기쁨과 감사로 그 분께 순종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종교는 바깥에서 우리 내면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복음은 우리 안에서 바깥으로 솟아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내면 깊이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미래를 앞서 경험함' (Forward-Back), 부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 나라가 출범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부활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는 완전하게 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세워질 것이고, 주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물질세계의 모든 망가진 것들을 깨끗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산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문화의 창조자로 살아간다.                        (출처 : 팀켈러의 센터쳐치)




무너짐 경험

목회자 칼럼 / 냉담함과 무너짐을 경험하면서 가는 길


메마름과 냉담, 무너짐과 공허가 가득차 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을 통해서 우리는 집착과 중독을 제거하는 영적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인도 캘커타에서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빈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섬겼던 마더 테레사는 97년 노벨상을 받는다. 그런데, 이 상을 수상하기 몇개월 전에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 할 때 혀를 놀려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삶에 있었던 "영혼의 어두운 밤"을 이야기한 것이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채, 건조함, 냉담함 , 어둠, 외로움, 무너짐, 고통 등이 수십년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영혼들을 섬겼던 '마더' 즉 '그 어머니'도 그랬다면 과연 지금 영혼을 돌보는 귀한 부름에 응답하며 그 길을 가기 시작한  목자들의 삶은 어떨까요? 나에게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면, 목자의 삶에도 마더 테레사가 경험하며 고백했던 '영혼의 어두운 밤'이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영혼을 돌보는 목자의 삶에도 '하나님 앞에서의 냉담함과 무너짐'의 때가 나타난다.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또한, 목자는 그러한 상태를 겪고 있음에도, '목자에게 맡겨진 양들'을 꾸준히 돌보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불안하고 건조한 목자가 어떻게 양들을 먹이며 인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는 목자들에게는 종종 그러한 상태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서, 담임목사나 부모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성도나 자녀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없기에 더욱더 마음 깊은 곳에서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테레사의 삶에서 발견하는 교훈은 주님앞에서 목자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지혜가 된다.  그녀가 50년이상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더'로 또는 '목자'로 신실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두운 밤을 지나는 그 때는 참으로 불안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지만, 하나님의 변함없고 신실한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에 온전히 반응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정한 감사와 사랑의 노래를 하게 된다.    *최정섭 10-14-2018






행복, 행위언어

‘행복은 행위언어이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표현이 있다. 최근에 번역된 “생생한 우리말로 푼 시편"에서  시편1편은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로 시작된다.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시편1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을 알아보자.

친절하게도 이 번역본에는 중요한 단어에 대한 설명을 달아놓았다. 아래에 옮겨본다.

  • 행복 : 동사<에쉐르> 명사<아샤르>

[이 단어의 기본 말뜻은 ‘곧다'는 말이다. 이 시편에서는 ‘평탄하다' ‘앞으로 가다' ‘똑바로 가다' ‘계속해서 가다' ‘전진하다' ‘번창하다'는 말뜻으로 확장된다. 흔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알고 있는 ‘행복'을 히브리어에서는 <곧게 걸어 나가다>는 행위언어로 이야기 한다. 행복을 ’삶을 진행하는 태도’로 이해한다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행복은 삶을 사는 길이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끝없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로 말이다. ]

“행복은 ‘삶을 곧게 걸어 나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행위 언어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려보니, 좀더 삶에 대하여 용기가 생긴다. 내가 원하는 어떤 상태에 다다르지 못하거나 그 상태에서 이탈하면 행복하지 않다라고 여겼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사는 이유를 잘 찾았다고 여겨서 열심을 내어 살아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물거품 처럼 사라지는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삶은 참혹하게 변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살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간다.' 시편에서 알려주고 있는 <곧게 걸어 나아가는 태도>로 살아가면 ‘살 이유'를 계속 찾게 될 것이다. *10-7-2018 / 최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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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있어야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

금요일 늦은 밤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회 성도님께서 자신이 알고 지내는 분을 위해서 긴급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전화였습니다. 전화 하신 자매님은 본인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 기도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저는 그 기도제목을 받고 즉시로 기도하였고, 목자님들에게 알려서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너무나 위급한 상황중에 있는 분을 위한 기도였는데, 위험한 순간을 잘 넘기고 회복되기를 기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합심하여 드린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기도를 부탁한 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내 오셨습니다.

(히 6:10)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아니므로,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을 섬겼으며, 또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Heb 6:10) 『 God doesn't miss anything. He knows perfectly well all the love you've shown him by helping needy Christians, and that you keep at it.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위한 기도는 -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소서' 라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보내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앞으로도 워십프론티어 교회는 기도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안에서 가족이 필요한 분들에게 가족 공동체가 되는 교회, 함께 웃고 함께 울기 원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군가가 이웃이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할 때, 우리 워십프론티어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교회로 준비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구원의 복음이 온전하게 전달되는 교회로, 가족 공동체로서의 목장이 튼튼히 세워지는 교회로, 진정한 변화와 헌신이 일어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준비된다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필요가 있는 분들이 와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대를 부르노니 와서 우리와 함께 살라. 살면서 우리에게 베풀고, 우리에게서 받으라."
(H.나우엔 / 새벽으로 가는 길)


“H.나우엔이 가족 공동체를 이룬 곳” @라르쉬 공동체 예배당

“H.나우엔이 가족 공동체를 이룬 곳” @라르쉬 공동체 예배당

@ L’arche, Daybreak,  Toronto

@ L’arche, Daybreak, Toronto

“Beloved Henri” @ H. 나우엔 무덤과 의자

“Beloved Henri” @ H. 나우엔 무덤과 의자

확신하는 것

“확신하는 것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용기를 얻고 새로워지는 순간은 누군가로 부터 받은 호의와 은혜를 기억할 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삶에 많은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저에게서 흘러간 사랑보다는 받은 사랑이 작은 적이 없었습니다.

87년에 8개월 동안 30여명의 대학생들이 ‘예수 제자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님의 청년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함께 모였습니다.
겨울 방학때는 신앙의 기본이 되는 강의를 들으며 함께 지냈습니다.봄 학기에는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서로 섬기고 기도하며 지냈습니다.그리고 여름 방학때는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에도 모든 사람중에서 막내로 였던 저는, 작은 사랑을 주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오래곤주의 포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함께 훈련받았던 분들중에 두분을 30년만에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포틀랜드 시내에 있는 천주교회 정원인 “The Grotto”에 가게 되었습니다. 시내에 있는 작은 숲이었지만, 모든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높은 나무 사이에 나있는 작은 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 지를 나누었고, 그동안 살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훈련받았던 그 시절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공동체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가족공동체로서의 교회’라고 믿습니다.  지난 30년동안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호의를 경험하고 선물을 받아 공동체의 복을 받았던 분들이 양떼를 섬겨 목양하는 비젼을 다시 붙들게 됩니다. 캠퍼스와 이웃과 교회와 문화와 연령과 신분과 전문분야와 사회신분은 다를 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양떼를 목양하는 일에는 충성하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임을 확신합니다. 주님! 주님의 제자들에게 목양을 회복하소서!

@ the Grotto, Portland, OR

@ the Grotto, Portland, OR

컨퍼런스 참석

제목 : 81차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2012년 이후 6년만에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참석한 것이지만,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저도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워십프론티어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진심으로 교회의 소식을 물어오시면서 많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 다녀오도록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주님께서 몇가지 배운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정교회'에 대한 비젼입니다. 몇년만에 참석한 컨퍼런스이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개척'을 하신 목사님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과 태도가 매우 평안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힘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가득하여 순종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분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정 교회'를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교회를 개척하신 분들 이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들이 품고 있는 확신을 나누어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보스톤 지역을 향한' 비젼입니다. 각 지역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분들이 참석했지만, 그 어떤 분들도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 목회를 하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참석한 분들중에서 '보스톤 지역'과 같이 많은 분들이 유입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타지역으로 흘러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목회 상황을 잘 이해하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같은 고민이 있었고 무엇이 그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를 참석하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은 '성경 대로'의 비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젼입니다. 나의 사역이나 우리 교회의 사역이 다만 나 자신과 우리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교회의 현실이 있기에 누군가가 나가고 누군가가 들어오면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디에 있든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일꾼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핵심은 가정교회를 책임지고 사역하는 '목자들'입니다. 목사는 그분들이 자신의 목양을 잘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빠르게 들어오고 나가는 보스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들'이 자신의 사역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워십프론티어 교회를 통하여 이러한 비젼이 온전히 이루어 지도록 더욱더 충성하고자 합니다.


셋째는, '부부가 함께 쓰임받는' 비젼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중에 하나는 '왜 혼자 오셨습니까? 사모님은 왜 안오셨습니까?' 였습니다. 교회의 부흥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목사 부부의 건강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 사모님들과 컨퍼런스에 함께 오세요. 사모님들이 목사님에게 배우게 하지 마시고, 사모님들도 직접 와서 스스로 하나님게 배울 수 있도록 함께 오세요" 저도 앞으로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앞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부부가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컨퍼런스를 섬겨주신 목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온누리성결교회, Protland

컨퍼런스를 섬겨주신 목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온누리성결교회, Protland

기도 합주회

칼럼 "기도 합주회"

90년대 초반 3년동안 선교단체의 간사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내가 담당했던 사역은 서울 경기 지역의 몇몇 대학 캠퍼스를 담당하여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모임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자격이 준비되고 능력이 부족했으나 주님께서 그 순수한 열정을 받아주셔서 사역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새벽이슬 같이 순전하게 헌신 하고자 했던 수많은 청년들을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속한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 속한 분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특권이었습니다. 특히, 선교단체와 교회 대학부 사역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합기도회를 하였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역사앞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한 그 모임을 '기도 합주회'라 불렀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의 말씀을 붙잡고 연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많은 숫자가 모이기 보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순수한 마음을 갖고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에 우리들의 그 기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셨을 줄 믿습니다.
-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그이후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큰 변화들이 세상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종종 혼란을 느낍니다. 타국땅에 오지 않고 고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런 혼란을 조금이라도 적게 느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꾼으로 쓰임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주신 그림은 다시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이곳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속한 교회안에서 자연스럽게 연합하여 기도하는 모임을  일으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자신이 속한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땅(보스톤)을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하는 연합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기 얼굴

칼럼 /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아침에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한 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장을 하는 분들은 화장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 표정이 활기차고 밝기를 원해서 아침이나 일정한 시간에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표정 연습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셀카를 찍으면서 자신의 표정을 살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의 표정을 스냅사진으로 찍듯이 일상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면서 일상을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저는 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셀폰으로 무엇인가를 하다보면 어느순간 셀폰 화면이 어두운 배경을 갖게 되면 그 뒤에 제 모습이 비춰질 때 입니다. 그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이것이 나란 말인가!' 어느때는, 많이 피곤해 보이고, 얼굴은 거칠어져 있고, 생기가 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정말 이모습이 나의 모습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표정'은 어느 순간에는 '말'보다 더 많은 메세지를 상대방에게 보냅니다. '표정'에는 그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사람의 모습도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는 '치유 공동체'이며'사명 공동체'라고 합니다. 보스톤에 와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저에게는 '치유'와 '사명 회복'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저의 표정이 좀 달라졌고 좀더 평안해 보인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성도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얼굴 표정은 억지로 바꾸어 지지는 않습니다. 비지니스 용으로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 어떤 표정인지를 모를 그 때라도 감사와 평안이 넘쳐나고 행복한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우리 워십 프론티어 성도님들에게 그러한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자기 밖으로

목회자 칼럼 / '자기'밖으로! '삼위일체'라는 춤 안으로!

주중에 이종태교수의 자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의 책을 번역하면서 목사로 번역가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앞부분에 집중하다가도, 마지막 부분의 결론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정말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여러번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종태목사의 자료를 보면서,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구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강조하고 싶어서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루이스는 '구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 자기를 잃어버리고 / 자기 밖으로 나와  /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안으로 들어가 살면 / 참 자기를 찾는다"

지옥형 인간은 '자기 안으로 굽는 인간'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원은 한마디로 '자기 밖으로 나오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행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각자의 생명 속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진정한 인격은 오직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아를 그에게 바치기 전까지는 진정한 자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생명 속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삼위일체라는 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나로 그분의 춤안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로 그분의 춤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로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이 시대의 설교

칼럼 :  포스트 모던 (post-modern)시대의 내러티브와 복음 / 2018년 7월 주보에 올린 글


팀 켈러(Timothy Keller)목사는 '설교(Preaching)'라는 책 속에서 이 시대에 자명하다고 여겨지면서 흐르고 있는 5가지 내러티브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종교적인 입장은 사적인 영역에 두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
'도대체 누가 감히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말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말고 너 자신이 되라'
'역사의 잘못된 쪽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기독교 설교자들과 성숙한 기독교인들은 진실성과 겸손과 사랑의 원리를 가지고 긍정할 것을 언급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러티브의 근원에는 기독교 사상으로 부터 출발한 요소들이 있기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러티브의 위험성과 어리석음도 보여줘야 함을 강조했다.

20대 초반에 나이 신앙과 삶을 새롭게 방향 전환하게 했던 말이 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삶이며 관계이다'
기독교를 종교라고 할때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여 어떤 특성과 차이점이 있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다.

위의 다섯가지 포스트모던 시대의 내러티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예리해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오는 비수와 같은 시대정신은 '하나님과의 무관계'이다.

선물로 주어진 자신의 삶과 생명에 대하여 마치 자신이 스스로 생산한 것처럼, 또는 자신이 스스로 소유한 것처럼 살라고 하면서 '하나님 없음'을 말하고 있다.이 시대에 그리고 이 도성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전히 선포하는 교회와 목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고전 1:20-21)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