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까요?

October 22, 2017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서충원목사(총신대 조직신학 Th.M, 숭실대 Ph.D, 전 서울신대 교수, 현 샬롬누리영광교회 담임목사)의 글을 나눕니다.>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은 성경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죽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구원론이 퍼져 있지만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전적인 오해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행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톨릭의 공로사상을 부정한 것입니다. 선행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정입니다. 이런 자기 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러나 자기 의에 대한 비판이 반동으로 나아가서 '행함은 구원과 상관없고 단지 믿음뿐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키는 것이고, 이것은 야고보서의 말씀,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는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행함 있는 믿음이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입니다. 

본래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모순되는 진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루터와 칼빈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바울의 말을 선행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야고보와 바울이 모순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큰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율법의 행위란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할례나 안식일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할례나 안식일을 자랑하면서도 실상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유대주의자들을 바울은 비판한 것이지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새 관점주의자 제임스 던이나 톰 라이트의 입장이 옳습니다. 

바울의 의도는 할례가 중요하지 않고 행함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갈 6:13)." 바울은 행함과 믿음을 대조시킨 것이 아니라 할례와 행함 있는 믿음을 대조시켰습니다. 

공로사상은 사실상 행함없는 믿음입니다. 공로란 진정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공로를 주장하는 가톨릭 신학자들은 겉으로 보면 행함 없는 믿음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바리새인들처럼 행함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행함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행함 성령의 열매가 아닌 육체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종교적인 행위를 한 것이지 야고보가 말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믿음이 행함이 없다는 것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가 없다는 것처럼 모순된 말입니다. 오늘날 비도덕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며 행함없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다 거짓말하는 이들입니다. 행함없는 이들은 다 심판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