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 참석

제목 : 81차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2012년 이후 6년만에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참석한 것이지만,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저도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워십프론티어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진심으로 교회의 소식을 물어오시면서 많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 다녀오도록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주님께서 몇가지 배운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정교회'에 대한 비젼입니다. 몇년만에 참석한 컨퍼런스이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개척'을 하신 목사님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과 태도가 매우 평안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힘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가득하여 순종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분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정 교회'를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교회를 개척하신 분들 이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들이 품고 있는 확신을 나누어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보스톤 지역을 향한' 비젼입니다. 각 지역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분들이 참석했지만, 그 어떤 분들도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 목회를 하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참석한 분들중에서 '보스톤 지역'과 같이 많은 분들이 유입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타지역으로 흘러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목회 상황을 잘 이해하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같은 고민이 있었고 무엇이 그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를 참석하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은 '성경 대로'의 비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젼입니다. 나의 사역이나 우리 교회의 사역이 다만 나 자신과 우리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교회의 현실이 있기에 누군가가 나가고 누군가가 들어오면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디에 있든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일꾼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핵심은 가정교회를 책임지고 사역하는 '목자들'입니다. 목사는 그분들이 자신의 목양을 잘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빠르게 들어오고 나가는 보스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들'이 자신의 사역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워십프론티어 교회를 통하여 이러한 비젼이 온전히 이루어 지도록 더욱더 충성하고자 합니다.


셋째는, '부부가 함께 쓰임받는' 비젼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중에 하나는 '왜 혼자 오셨습니까? 사모님은 왜 안오셨습니까?' 였습니다. 교회의 부흥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목사 부부의 건강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 사모님들과 컨퍼런스에 함께 오세요. 사모님들이 목사님에게 배우게 하지 마시고, 사모님들도 직접 와서 스스로 하나님게 배울 수 있도록 함께 오세요" 저도 앞으로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앞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부부가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 합주회

칼럼 "기도 합주회"

90년대 초반 3년동안 선교단체의 간사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내가 담당했던 사역은 서울 경기 지역의 몇몇 대학 캠퍼스를 담당하여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모임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자격이 준비되고 능력이 부족했으나 주님께서 그 순수한 열정을 받아주셔서 사역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새벽이슬 같이 순전하게 헌신 하고자 했던 수많은 청년들을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속한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 속한 분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특권이었습니다. 특히, 선교단체와 교회 대학부 사역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합기도회를 하였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역사앞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한 그 모임을 '기도 합주회'라 불렀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의 말씀을 붙잡고 연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많은 숫자가 모이기 보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순수한 마음을 갖고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에 우리들의 그 기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셨을 줄 믿습니다.
-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그이후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큰 변화들이 세상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종종 혼란을 느낍니다. 타국땅에 오지 않고 고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런 혼란을 조금이라도 적게 느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꾼으로 쓰임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주신 그림은 다시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이곳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속한 교회안에서 자연스럽게 연합하여 기도하는 모임을  일으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자신이 속한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땅(보스톤)을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하는 연합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기 얼굴

칼럼 /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아침에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한 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장을 하는 분들은 화장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 표정이 활기차고 밝기를 원해서 아침이나 일정한 시간에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표정 연습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셀카를 찍으면서 자신의 표정을 살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의 표정을 스냅사진으로 찍듯이 일상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면서 일상을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저는 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셀폰으로 무엇인가를 하다보면 어느순간 셀폰 화면이 어두운 배경을 갖게 되면 그 뒤에 제 모습이 비춰질 때 입니다. 그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이것이 나란 말인가!' 어느때는, 많이 피곤해 보이고, 얼굴은 거칠어져 있고, 생기가 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정말 이모습이 나의 모습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표정'은 어느 순간에는 '말'보다 더 많은 메세지를 상대방에게 보냅니다. '표정'에는 그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사람의 모습도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는 '치유 공동체'이며'사명 공동체'라고 합니다. 보스톤에 와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저에게는 '치유'와 '사명 회복'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저의 표정이 좀 달라졌고 좀더 평안해 보인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성도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얼굴 표정은 억지로 바꾸어 지지는 않습니다. 비지니스 용으로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 어떤 표정인지를 모를 그 때라도 감사와 평안이 넘쳐나고 행복한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우리 워십 프론티어 성도님들에게 그러한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자기 밖으로

목회자 칼럼 / '자기'밖으로! '삼위일체'라는 춤 안으로!

주중에 이종태교수의 자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의 책을 번역하면서 목사로 번역가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앞부분에 집중하다가도, 마지막 부분의 결론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정말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여러번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종태목사의 자료를 보면서,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구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강조하고 싶어서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루이스는 '구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 자기를 잃어버리고 / 자기 밖으로 나와  /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안으로 들어가 살면 / 참 자기를 찾는다"

지옥형 인간은 '자기 안으로 굽는 인간'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원은 한마디로 '자기 밖으로 나오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행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각자의 생명 속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진정한 인격은 오직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아를 그에게 바치기 전까지는 진정한 자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생명 속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삼위일체라는 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나로 그분의 춤안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로 그분의 춤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로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이 시대의 설교

칼럼 :  포스트 모던 (post-modern)시대의 내러티브와 복음 / 2018년 7월 주보에 올린 글


팀 켈러(Timothy Keller)목사는 '설교(Preaching)'라는 책 속에서 이 시대에 자명하다고 여겨지면서 흐르고 있는 5가지 내러티브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종교적인 입장은 사적인 영역에 두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
'도대체 누가 감히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말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말고 너 자신이 되라'
'역사의 잘못된 쪽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기독교 설교자들과 성숙한 기독교인들은 진실성과 겸손과 사랑의 원리를 가지고 긍정할 것을 언급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러티브의 근원에는 기독교 사상으로 부터 출발한 요소들이 있기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러티브의 위험성과 어리석음도 보여줘야 함을 강조했다.

20대 초반에 나이 신앙과 삶을 새롭게 방향 전환하게 했던 말이 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삶이며 관계이다'
기독교를 종교라고 할때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여 어떤 특성과 차이점이 있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다.

위의 다섯가지 포스트모던 시대의 내러티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예리해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오는 비수와 같은 시대정신은 '하나님과의 무관계'이다.

선물로 주어진 자신의 삶과 생명에 대하여 마치 자신이 스스로 생산한 것처럼, 또는 자신이 스스로 소유한 것처럼 살라고 하면서 '하나님 없음'을 말하고 있다.이 시대에 그리고 이 도성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전히 선포하는 교회와 목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고전 1:20-21)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